그의 전화를 받고 호텔 밖을 나가보니, 그는 어제의 자신의 차가 아닌 나에게서 사 간 현대 지프차 갤로퍼를 타고 나타났다.
그 차를 타고 모스크바 시내 곳곳을 구경시켜주려고 한 것이다.
일전에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마리나 내외가 나에게 산 한국차를 몰고 탈린 시가지를 돌아다녔을 때도 나의 감회는 너무 벅찼었는데, 이번엔 세계적인 도시 한 복판인 모스크바 시내를 내가 판 차인 한국차를 몰고 누비고 다닐 것이다.
안드레아의 배려에 나는 또 한 번 벅찬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런 기회가 인생에서 오기가 쉬울까?
쉽지 않은 기회였다.
안드레아는 일단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곳인 트레티야코프 박물관을 데리고 갔다.
이 곳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2시간을 돌아도 끝이 없는 행렬에 나중에는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웅장했다.
미술관을 나와 모스크바 시내의 한적한 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안드레아와 길을 걷는 도중에 길 앞에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군인을 보자, 왜 저기 저렇게 서 있냐고 물어보니 안드레아의 말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피를 팔기 위해 거리에 나와 서있는 거라고 했다.
피와 맞바꿀 빵을 사기 위해서...
모스크바의 두 얼굴을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세계적인 도시 중의 가장 많은 달러와 벤츠를 가지고 있는 도시 모스크바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개방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 공산치하에 자리만 보존하면 일생 편하게 자신의 일신을 보장받는 계층인 노인들과 군인들의 처우는 생각보다 비참했다. 평생 유지될 줄 알았던 군인들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처지가 된 것이다. 자신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 국가 대신에 그들 스스로 살아야 했기에 빵 하나 얻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군인의 처연한 모습을 뒤로하고 나와 안드레아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 한국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에서 안드레아는 자신의 고민거리인 아내와 애인에 대한 고충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여 주며 도저히 헤어질 수 없다고 그녀에게 빠져 있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나쁜놈이긴 했으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내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사진 속의 그녀를 보니 안드레아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갈 정도로 사진 속의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젊은이들의 사랑앓이는 비슷한 가 보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서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머리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 데 몸과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는다나... 부럽다고 해야 되는 건가?
안드레아 덕분에 나는 모스크바의 이 곳 저곳을 다니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알게 되는 참다운 도시 탐험을 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모스크바의 시내를 그려보라면 생각날 정도로 인상 깊은 모스크바의 여행기였다.
나의 아버지와 원 사장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일을 하고 난 후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한 것 같아서 값진 보상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안드레아가 호텔로 데려다주며, 다시 한국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이후의 일정은 아버지와 원 사장과 함께 빅토르 초이의 벽으로 유명한 곳인 젊은이들의 장소인 아르바트 거리를 거닐며 즐비하게 늘어선 노천카페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키며 러시아 젊은이들을 감상하기도 했으며, 나의 꿈인 모스크바 대학이 있는 언덕에서 어마한 크기의 모스크바 대학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언젠간 나도 저곳에 서 있을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며....
나의 모스크바 여행기는 앞으로 나의 사업의 행로를 결정하기 위한 결단의 순간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나의 꿈의 도전장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