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 어린 시절 공항버스를 타고 가면서 항상 로터리를 돌면 보이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젊은이들의 꿈의 결정체였다. 고교시절 나의 친구 진선이는 자신의 동네에 있는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녀를 보고 비웃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 있던 그녀의 동네는 신림동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동네 역시 국내에서 유명한 대학 세 곳이 삼각형을 이루며 대학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던 동네에서 가까운 곳이었지만 나는 언감생시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그저 유흥의 장소로 그곳을 택하곤 했지. 내가 그곳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곳에는 과연 어떤 이들이 가는 걸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곳이었지...
그러나 그 날 나는 당당하게 이 곳에 서 있었다. 그 길을 걸어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학과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대학 두 곳의 합격증이 지금 내 손안에 들려있다.
수많은 횟수의 입시를 치르고도 들어가지 못했던 나의 꿈의 대학과 나의 성적으로는 엄두도 안 나던 두 대학의 합격증이 10년이란 긴 시간 뒤에 내 손안에 들어있다.
결정을 해야 했다.
서대문 근처에 사는 남자 친구가 나를 도와주러 신촌으로 나왔다.
원서를 넣어야 하는 마지막 날에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지를 못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근처 피시방에 들어가 원서를 작성했다. 대학원은 시험보다는 구두면접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원서 마지막 접수일에 그 친구와 함께 늘어선 긴 줄에 합류했다.
나의 전화에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하고 나타난 그 친구...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서류심사를 마치고 난 후 이어지는 인터뷰 날에 나는 떨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간 곳에 여러 명의 교수님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이미 티브이로 보던 유명하신 분도 계셨다.
일반적인 다른 학생들과 달리 여유 있는 나를 보고 오히려 그들이 더 긴장하는 듯했다.
전공과목 교수 역시 만만치 않은 포스를 풍겼다. 급하게 서술하느라고 오타를 미쳐 고치지 못한 채 들어간 서류를 가지고 나를 공격했다.
학생으로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것 아니냐고....
나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나서, 그렇다고 오타로 해서 나의 가치가 희석된다면 그것 또한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당황하라고 던진 질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다른 교수들의 질문들은 오히려 평이하다 못해 내가 리드하는 기분이 들었다.
질문하는 자와 대답을 하는 자의 태도가 뒤바뀐 것 같았다.
이미 나의 이력을 알고 잇던 그들은 나에게 질문을 할 때 긴장감을 느꼈고, 나는 너무 여유롭게 질문들에 대하여 소신 있게 답변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질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글보다는 말이 강한 나였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순간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재수가 없어 떨어지더라도 나는 최선을 다했으리라....
이제껏 나의 의사와는 달리 나는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살았다. 내 작은 몸뚱이보다도 큰 거대한 돌덩어리가 나의 가슴을 짓누루고 있었다. 그것은 남들이 보기엔 부러움의 결정체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와 연결된 모든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삶이 내 삶이 아닌 끌려다니는 듯한 족쇄 같은 날들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적당한 성공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배부른 투정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는 고난의 시대 안에서 성공이었기에 나를 향하여 비난과 시기가 빗발 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행복하지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의 여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이 내 맘의 평안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이제 그 무거운 돌덩어리를 내려놓고 각자 자신들의 갈 길로 가야 할 날만 남았다.
이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하여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 나갈 것이다.
스물여덟 살의 어리다면 어린 쉬지 않고 달려온 나의 지친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여리고 여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독해지고 강해 질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길 안에서는 그 방법만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었고, 살아나갈 수 있는 방패막이였다. 스물여덟의 청춘에게는 가혹한 현실이기도 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그 험한 길을 나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왔던 것도 운이 좋아서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내 안에서 움틀거리는 순전히 나만의 길을 갈 것이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삶을 살 것이다.
비교적 대학과는 달리 대학원은 입학이 쉬운 편이라 나 역시 합격을 했다.
돈만 있으면 다 들어간다는 대학원이라지만 나는 여기까지 걸어오기까지 나의 힘으로 달려왔다.
대학 때 지도교수가 이 곳에 연구교수로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