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난 후, 처음으로 느껴 본 행복감 속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게 해 준 집. 그 행복했던 순간이 이렇게 쉽고 짧게 끝이 나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가능한 행복을 꿈꾸던 집은 공포감과 두려움으로 집안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새하얀 집이 이미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 안위가 걱정되었던 젊은 목사님의 권유로 우리 가족은 그의 집으로 임시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빈 몸으로 들어온 나를 따뜻한 곳으로 데리고 들어와 이불을 펴 주고 쉬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 상황에 무슨 말들이 필요할까?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진 눈물자국이 마르지도 않은 채, 혼이 빠져서 벽을 보고 누워있는 나를 향해, 남편은 잃어버린 신분증과 일어난 일들을 알리기 위해 국경에 위치해 있는 이민국 사무실을 다녀오겠다며 목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잠시 후, 국경을 다녀온 남편은 여전히 뒤돌아 벽만 응시하고 있는 나를 향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민국 오피서에게 다녀온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난 후, 국경 오피서가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살아 돌아와서 축하한다"라고 했단다. 이 말을 들으니 지난 새벽에 일어난 일들이 다시 한번 공포스럽게 떠오르며 등꼴이 오싹해졌다. 이미 알려진 대로 국경 주변 도시의 치안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가까운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인 미국과 멕시코의 치안상태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하루에도 수시로 들고나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특히 주말에는 미국에서 멕시코로 들어오는 관광객들 또한 엄청나게 많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재수 없게 사고를 당해 차도 뺏기고 달랑 몸만 미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들었다. 특히나 내가 당한 총강도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주 희박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만큼 사람 목숨이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구나!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한 일은 더 크게 와닿기 마련이다.
남의 불행 앞에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 그러고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포스럽고 위험한 상황이 누그러지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겪지 않은 불행보다 남의 불행이 더 크게 와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와 벌어진 상황으로 인해 당분간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나가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남편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에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저 눈 감고 쉬고 싶었다.
그대로 남아있는 세간살이 등 남겨두고 온 것들에 대한 걱정보다 아예 그쪽으로는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나는, 그 날이후로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그 집을 찾지 않았다. 그대로 남겨진 세간살이와 남아있는 상황들을 정리하기 위해 남편만이 분주하게 그 집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을 뿐이었다.
집 안에서 이가 시리도록 푸른 태평양 바다가 물결치던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말까 한 사치스러운 담벼락, 집을 나와 5분 정도만 걸어내려가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넓고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던 바닷가. 새벽안개가 살짝 덮여 있는 날에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는 바닷가에서 아침 산책이 가능했던 꿈만 같았던 그곳에서 나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을 겪었다. 아무리 물 좋고 산 좋은 곳이라도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내게는 더구나 환상 속에서 바다만 바라보고는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에 목매달아 했다기보다는 시간에 이끌려 어느 순간 나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도 전에 나는 부모로서 그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만 했다. 나 자신의 두려움과 생명보다는 아이들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결혼의 허망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려고 이 사막 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일까?
회의적이었다. 다 때려치우고 나의 부모 곁에 가고 싶었다. 나 또한 나 밖에 모르던 내 부모님의 귀한 자식인데....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자신들이 덮었던 겨울 담요 하나 달랑 들고 그 집을 빠져나와 조금 전까지도 자신들이 편안하게 잠자던 그곳이 아닌 낯선 곳에 누워 있는 엄마의 뒷모습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여리고 작은 두 아이의 두 눈망울이 내 눈 안에 비쳤다.
그날 우리 부부에게 생각하기도 싫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면, 아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시간이 흘러 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에도 뜬금없이 그날의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지곤 했다.
잠에서 깬 아이들 시야에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부모의 모습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날 일들.... 상상하기도 싫은 두려움이 나를 항상 에워싸고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36년간 쉼 없이 달려왔던 나의 삶 이후에 몸도 생각도 멈추어 버린 나의 겨울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