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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Sep 16. 2020

누가 뒷돌이의 마음을 훔쳤을까?

모던 토킹의 브라더 루이를 기억하며

굴레방다리를 항상 누비고 다녔던 그 길 선상 위에 나의 청소년기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다.

그 부근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청춘은 서로 감정이 뒤섞인 오해와 서툴고 수줍은 사랑도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는 항상 돌아오지 않는 짝사랑들로 혼자서 되지도 않는 사랑앓이를 하느라 분주했다. 몸보다는 마음이 항상 바빴다.


학교에서는 그 당시 누구의 마누라라고 별명을 짓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를테면 그 당시 유명한 팝스타의 멤버들이 주를 이루었다. 는 특이하게도 그 당시 좋아하던 배우가 마크 하몬이라고  그 대의 아이들이 모르는 미국 방송에 티브이 시리즈로 나오는 배우를 좋아해서 발음도 잘 안 되는 마크 하몬 마누라라고 불렸다.  친구들은 나보고 특이하다고 했다.  어째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아직도  배우가 그렇게 섹시하고 잘 생길 수가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그가 몇 년 전에 티브이 시리즈에 여전히 주역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잘 늙은 그의 모습에 너무 흐뭇한 적이 있었다.


현실에서는 또 먹심의 먹돌이도 좋아해야 하고, 다니던 성당에 대신고 다니는 오빠도 짝사랑해야 되고 정말이지 바쁜 나날들이었다.


우리의 동선은 항상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은 미자를 굴레방다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미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뒷돌이가 아는 척을 했다. 그 날따라 핑크색 남방셔츠를 입고 있어서 까만 얼굴이 더 까맣게 보였다. 몇 마디 나누고 있는 사이 미자가 왔는데 미자가 뒷돌이를 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다. 뒷돌이와 헤어지고 나서 미자가 그가 너무  괜챦다고  호들갑을 떨며 자기를 소개해 달랬다.

 

다음에 만난 날

"우리 친구가  그쪽한테 관심이 았다는데 한 번 만나볼래요?" 뒷돌이 대답이 없다... 미자는 그렇게 까인 거다.

보분이와 내가 갈 때마다 뒷돌이가 집에 있었다. 그 친구가 집에 있을 때마다 우리가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은 혼자 밥을 해 먹는다고 수돗가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쌀을 씻고 있는 뒷모습이 처량 맞았다.

누나가 비행을 가고 나면 며칠은 혼자서 지내야 하는데 밥도 자기가 알아서 익숙하게 먹는 아이긴 했지만, 그 당시 정상적인 가족상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가 참 측은하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어느 날 먹심에서 나오다가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를 보더니 오렌지 주스 마시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거절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축 처진 어깨가  아주 외로워 보였다.

 나이 든 부모라지만 살아계신 거와는 천지차이였으니,  아무리 누나가 잘해줬어도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그리울까? 그 날 따라 너무 외로워 보여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 어딘가의 페에 가서 정말로 오렌지 주스를 사줬다.

별말 없이 오렌지 주스만  마시다 나왔는데, 이번엔 집까지 걸어가쟎다. 또 집까지 1시간이 넘게 걸었다. 걷는 동안 느껴지는 어색하고  서먹한 이 감정들....... 경희네 집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 느낌이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다음엔 더 맛있는 거를 사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집에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줬다.

뭐지?  이 느낌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보분이도 불러서 같이 오자고 말을 돌렸다. 

그 날 이후 경희네서 그를 마주치는 날이면 과 같지 않은 서먹함이 있었다. 서먹한 나에 비해 뒷돌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대했다.


방학이 되면 우리들이 모여서 노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는데 그날도 우린 뒷돌이네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당시 핫한 음악 중 하나가 모던 킹의 댄스 음악이었는데 나는 브라더스  루이를 무지 좋아했었다. 그 단순하고 경쾌한 리듬이 듣기가 너무 좋았다.


"혹시 모던 톡킹 판은 없어요?"

"난 브라더 루이 엄청 좋아하는데....."

"아직 그 판은 없어요"

"다른 노래는 좋아하는 거 없어요?"


뒷돌이는 경희에게도 좋아하는 노래가 뭐 있냐고 물어보았다.

경희는 퉁스럽게 없다고 대답했다. 경희의 행동은 어색하다 못해 평상시와는 다르게 그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부터 경희는 서서히 살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우린 잘 알아채지 못했다.

경희의 풋내 나는 첫사랑을.....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 상대방이 감추려고 하는 내용도 미련하지 않을 정도만 되면 눈치를 채지만, 그때는 경희도 처음으로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이라 스스로도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감정조절을 못 했던 건데, 우리도 말로만 떠들고 다녔지 사실 그 감정이 무언지 몸으로는 느껴지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틈만 나면 먹심의 디제이 얘기만 늘어놓고 보분이는 연신 맞장구를 쳤었다.

오죽하면 길에서 만난 뒷돌이가 나를 보고 먹심 가서 먹돌이나 만나라고 쫄면 값을 줬을까?

그런데 광화문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신 날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었다.

죄를 짓고 감추고 있는 비겁한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보분이에게만 살짝 털어놓았다. 우연히 만났는데 어쩌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말을 하지 못했다고... 경희한테는 오해할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됐다고 하니.   보분이가 갑자기  뜬금없이 자기도 뒷돌이를 좋아한단다..


경희, 나, 보분이 이렇게 셋이 우리는 각자의 숨겨진 속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분이네 집에서 밤을 쇠는 날에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잠도 안 오고 밤하늘의 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뜬금없이 경희가 뒷돌이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한다.


보분이와 나는 적잖이 놀랬다. 그 말없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뒷돌이에 대해 부정적인 것만 우리 앞에서 이야기하면서  욕을 할 때 느꼈어야 했는데, 그 말뜻을 반대로 이해하기에는 그때 우린 너무 어린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그날 밤 경희의 그 한마디에 나의 죄책감은 더욱 불어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여전히 경희에게 그 날의 일들을 숨긴 채 보분이와의 무언의 동조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자 나는 먹돌이와 뒷돌이의  초콜릿을 사러 보분이와 함께 아트박스 문구점을 들렀다.

보분이도 뒷돌이에게 초콜릿을 준다고 나보다 훨씬 큰 초콜릿을 골랐다.

아침 일찍 뒷돌이를 만나 보분이와 같이 초콜릿을 주고 나는 바쁘다고 가야 한다니 뒷돌이 뜬금없이 내 나머지 손에 들려 있던 종이백을 보더니 먹돌이한테 가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했더니 잘 가란다... 보분이와 뒷돌이만 남겨둔 채 서둘러 나는 먹돌이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 날 이후 뒷돌이는 등하교 시간에 길에서 마주칠 때 평상시와는 다르게 고개만 까닥이고 아는 척을 안 했다.

나의 남사친이 화가 난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경희가 자기네 집에 가자고 우리들을 불러 모았다. 이상하게 경희네 집 가기가 꺼려졌다. 예전과는 달리... 하는 수 없이 경희를 따라 집에 가는 길에 경희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뒷돌이가 없을 때  몰래 방에 들어가 봤는데 이상한 초콜릿이 있더라고.. 궁금해 죽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경희가 뒷돌이 누나랑 어디 나갔다고 방에 들어가서 한 번 보자고 얘기를 한다.


보분이와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뒷돌이 방에 들어가 보니 전축 위에 입에도 안 된 내가 사 준 초콜릿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순간 가슴이 쿵했다.  혹시나 싶어 엘피판을 뒤져 보니 뜯지도 않은 모던 토킹의 브라더 루이가 수록되어 있는 엘피판이 들어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나려는 걸 간신히 참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나와 뒷돌이는 남자 친구와 남사친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상에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아무도 아닌 사이가 되어 버렸다.

경희의 뒷돌이에 대한 첫사랑 앓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심했고, 그런 친구를 나는 배신할 수 없었다. 경희는 이미 내가 자기를 배신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았고, 길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할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사실 광화문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뒷돌이는 나에게 이상한 행동을 했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는 거였다. 드라마 보면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오는 건 봤지만, 내가 당하니 얼음이 되어버리고 겁도 났는데 ,

"안 잡아먹어요"

 때 스치듯 말듯한 이성 간의 접촉이 말로만 떠들어 대던 그런 감정과는 완전히 다르게 가슴이 너무 뛰어서 그 기억이 꽤 오래갔었다. 아마도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뒷돌이의 다음 약속을 기다린 건지 아니면 거절할 수 없는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죄책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경희에게...


경희를 통해 어느 대학에 합격했단 소식을 들었다. 경희를 비롯해 보분이도 재수를 하지 않고 다들 각자의 대학을 들어갔지만, 나만 학교가 아닌 재수를 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

하루를 거진 학원에서 보내는 나는,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학원 입구에 서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 뒷돌이었다.

밥 사주러 왔단다. 보분이를 통해서 이 학원에 다니는 거 알았다고...

밥을 먹고 난 후...

힘들면 말하라는 그 말이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자 그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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