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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Sep 13. 2020

친구의 불어 터진 라면  한 그릇의 기억

 추억은 음악을 타고 흐르고...

3월의 꽃샘추위는 한 겨울의 에이는 듯한 화끈한 추위보다  으슬으슬  감질나게 추웠다.

한 겨울의 추위는 아니라도 가볍게 얇은 옷을 걸치고 나갔다가는 영락없이 감기가 걸리고 날씨였다.

 전날 밤 길을 건너다 거장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피하려허리를 삐끗하는 바람에 몸이 찌뿌둥하였다.

밖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배도 고프고 뜨끈뜨끈한 아랫목도 생각났다.

경희는 우리 학교인  중앙여고에서 바로 길 건너편 능수 독서실 골목길에서 살았다. 이 골목에 학교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능수 독서실이 그 시절 한성고와 중앙여고의 아지트 같은 곳이라 한성 중앙여고 커플들이 많이 생겨났었다.

여담이지만, 중학교 때 친구 인숙이네 집도 경희 집에서 가까운 윗동네서 살았는데 가끔 남동생 친구가 찾아와서 찾곤 했는데 , 그 친구가 내가 참 좋아하는 스타일인 지진희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때도 얼굴만큼이나 서글서글한 성격 좋은 친구였다고 했다.

굴레방다리의 걸출한 두 연예인중에 대표적으로 한성고의 지진희와 중앙여고의 고현정이 우리의 동시대에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난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마침 경희가 집에 있었다. 으슬으슬 꽃샘추위에 몸이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자. 경희는 바로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아랫목을 내어줬다. 거기 누워서 쉬라고....

그리고 나선 경희는 열고 나갔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누우니 세상 행복했다.


 그 당시 경희네 집은 한옥집이었는데 , 금 젊은 친구들은 생소할지도 를 광경이지만, 한 겨울의 추위에 닥은 따끈따끈해도 방의 위쪽 공기는 차가운 외풍 지역이 있었다.

 따끈따끈한 방에 누워 있으면 밖으로 나온 손과 얼굴이 시리고, 입으로 입김면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따뜻한 온기와 서늘한 차가움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 온기와 냉기 사이의 모호한 청량감이 나에게 아주 단순한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차가운 몸이 온탕 속으로 들어갈 때,  온몸에 느껴지는 짜릿하게 소름 돋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누워, 라디오에서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를 듣고 있으면 아주 최고치의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잠시 후 경희가 작은 반상에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을 가지들어왔다. 라면을 끓였다고 일어나서 먹고  난 후에 다시 자란다

근데 비주얼이 웬만해선 먹고 싶지 않은 개죽같았다.

"야! 너는 이걸 먹으라고 끓여온 거야. 다 뿔었쟎어 "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어 터진 라면은 입에도 안 데는 사람인데, 경희 딴에는 내 까탈스러운 입맛에 춰보겠다고,  계란 파 있는 데로 다 집어넣어 비주얼을 더 가까우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경희 엄마는 딸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딸을 아꼈고 , 시베리아 눈바람보다도 차가운 아들은 너무나 차가워 정 떨어진다고 아들에게 갈  정도 딸에게 다 가져다 바친 엄마였다.

내 아들이지만 너무 차가워 정 안 간다고....


당연히 경희는 부엌일이라고는 한 적도 없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라면 한 번도 끓여 본 적 없던 친구가 정성 들여 끓인 라면을 내가 외면했으니,  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너무 솔직했던 친구였던 거 같다.

결국 믿을 수 없는 경희를 대신해서 내가 끓여 먹었다.


방학이 되면 할 없는 우리들은 항상 경희네 모여서 노는 게 일이었는데 , 음식은 주로 내가 해서 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건 안 해도 딱 음식 만들기만 하는데, 보분이 친구 정금이는 오면 항상 친구 집이던 자기 집이던 시금치라도 다듬는 이였는데 손하나 까닥 안 하는 날 고 , 자기처럼 일하지 말라고 나중에 팔자도 그런 팔자 된다고 했었는데,  그때의 꼼작 안 했던 죗값인지, 나는 지금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이  살고 있는데 반해 , 그 시골  아낙 같았던 정금이는 자신도 한의사지만 부부 한의사로 잘만 살고 있다.  그런 거 보면 팔자도  믿을 것이  못된다.




그때 경희의 고민 중 하나가  자기 남동생이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안 하는 정표가,  너무 속상하고 누나 자기를 무시한다고 우리에게 너무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고 그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희도 말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한 아이였지만, 그 말할 수 없는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라 그렇게 편한 친구는 아니었다.

한 번씩 놀다 눈이 마주칠 때면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째려보고 있다가 들키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표는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 해 버린다는 , 언의 협박과 함께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중2병 같은 거였는데 , 유독 경희 동생이 차갑긴 했었다. 경희 성격 자체도 내성적이고 말이 다지 없는 여성적인 아이라 동생을  잘 다루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티 없이 밝은 우리의  보분이와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막무가내인 나는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고,  경희 집에 가면 정표에게 안부도 물어보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슨 음악을 듣는지 관심도 가져주고, 경희랑 가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노력도 했는데, 누가 보면 우리가 정표 누난 줄 알겠다 싶게 , 우리가 더 살뜰하게 친구의 동생을 챙겼다.  그 정도로  남매가 서먹서먹하였다.


그래도 우리들의 정성 어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우리가 부엌에서 먹고 왁자지껄하게 놀다 보면 제 아무리 칼바람이라도 궁금하게 되어있는데,  슬그머니 자신의 방에서 나와 슬쩍 한자리 차지하는 정표를 보고 경희가 의아해했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경희네 집에서 놀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우리를 동네 어귀까지 바래다 주기까지 했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경희를 비롯해 가족들 모두가 엄청 놀랬었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얽혀 왁자지껄하게 우리의 청소년기를 보냈었다.


우리가 경희네 집을 자주 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는 바로 뒷집 사는 뒷돌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경희는 어느 날 몹시 흥분된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쇼킹한 일이 있다고  수업이 끝나고 모이라고 했었다.

그 쇼킹한 일은 경희네 뒷채에 새로 이사를 오는데, 우리랑 같은 학년인 남자애가 이사를 온다는 것이었다.

그날부로 그 남자아이는 자신의 름보다는 뒷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아이를 보러 가기 위해 무슨 첩보영화라도 찍듯이 몰래 염탐을 하기도 했다.

누나랑 단둘이 사는 동갑내기 남자아이...

대한항공 스튜어디스였던 뒷돌이 누나는 나이 들어 쉰둥이로 낳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시골에서 살던 막내 남동생을 서울로 데리고  올라왔.


학교 끝나고 으로 들어오는 뒷돌이가 문을 두드리자,  보분이 잽싸게 뛰어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뒤이어 내가 짓궂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경희 친구예요"

"네, 안녕하세요"

키 크고 잘생겼지만 살짝 촌스러운 시골냄새를 풍기는 까만 얼굴은 우리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노안이었다.

대학생 군대 갔다 온 오빠라 해도 믿을 비주얼이었다.

여유 있게 웃기까지 했다.

인사를 마치고 자기 으로 들어가는 우리는 또 웃는다.

",  홍일점인 여자는 남자가 둘러싸고 있으면 혼자서도 당당하게 지나가지만,  청일점인 남자는 절대로 여자에 둘러 쌓여 있는 길을  지나간다는,  쟤는 넉살 좋게 잘도 지나 가네, 거기다 웃는 여유까지....." ㅎㅎㅎ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멀다 하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우리를 고 넉살 좋게 인사하는 뒷돌이는 성격도 노안만큼이나 아저씨스러웠다.

부모 없는 뒷돌이가 안 됐다고 경희 엄마는 우리을 때 뒷돌이도 꼭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한 팀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되었다. 뒷돌이 덕에 정표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경희 보고 잘해보라고 남자 친구 하면 어떻겠냐고 놀리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뒷돌이를 좋아한 친구는 따로 있었다. 우리의 순진무구한 보분이 알고 보니 속으로 뒷돌이를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그때, 뒷돌이는 대학생 누나랑 사귀고 있었는데, 자기는 늙어 보여서 레스토랑 이런데 프리패스라고 자랑질에 여념이 없었다.

"늙은 것도 자랑이냐"

근데 가만 보니 이 멤버 중에 말하는 사람은 뒷돌이하고 나 밖에 없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건 우리 둘이고,  나머진 웃기만 할 뿐 말들이 없었다. 나야 워낙 만 하면 웃긴 아이라 그렇다지만,  주인집 딸인 경희야 그렇다 쳐도 , 보분이 마저도 말은 안 하고 연신 웃기만 했었다.


한 번씩 뒷돌이가 자기 방으로 우릴 초대해서,  누나가 미국서 가지고 온 그 당시 귀하디 귀한 쵸이스 커피를 한 잔 씩 타주기도 했었다.  그 방에 유일하게 차지하고 있던 크고  고급스러웠던 오디오 세트에 엘피판들이 여러 장 꽂혀있었다.

우리가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엘피판을 빼서 들려주곤 했었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언제든 오라고..

엘피판이 들어 올려지고  지지직 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흐르면 우리들의 낭만적인 시간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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