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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Aug 26. 2020

명동성당의 미사포가 잘못했네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

그날은 크리스마스 전야인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남사친과의 약속을 명동으로 정한 것은 그간의 나의 나태했던 신앙생활에 대한 일말에 양심에 의해서 조금이라도 구원받고 싶어서였다. 그날이 마침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조금은 서둘러 집에서 명동으로 향했다. 80년대 후반의 명동은 지금 하고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게 젊은 학생들에게는  인기 있는 곳이 무지 많았다. 나는 고등학생이었지만, 남사친은 나랑 동갑이였지만 나와는 다르게 대학생 같은 노안 덕분에 이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성당의 본당 안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미사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조용히 앉아 경건하게 각자의 기도를 열심히 두 손 모아 드리는 중이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조금은 경건해진 마음으로 빈자리를 찾아 앉아 미사포를 쓰고 경건하게 앉았다. 그러나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기도는커녕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냥 눈만 감고 있는 시늉만 하다가 아까 전부터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짝 눈을 뜨고 옆라인의 의자를 쳐다보니, 기도는 안 하고 나만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 하나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는 눈을 더 힘껏 감고 더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똘기 충만한 나이였다.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인지 잡념만 들었다. 너무 이르게 나온 시간에 마음은 남자 친구와의 약속시간만 다가오길 바라고, 기도는 커녕 잡념만 생기는 이 어린 나일론 신자의 보이지 않는 뒤틀림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기도를 마친냥 일어서서 성당 출입구를 나가려고 하는데, 이 아이가 내 뒤로 따라오는 게 아닌가... 설마 같은 방향이겠지 하고 문을 벗어나 약속 장소인 코스모스 백화점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 네?"

퉁명스럽게 말을 받아치면서 발걸음은 계속 약속 장소를 향하여 걷고 있었다.

아까부터 성당 안에서 계속 지켜봤다고 기도하는 모습이 엄청 인상적이어서 따라왔다고, 시간 좀 내달라는 것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보아하니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학생이었다. 하기사 나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르긴 마찬가지이긴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은 없는 거 같았다. 너도 참 심심한 아이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 약속이 있어 가야 하니 시간이 없다 해도 나를 계속 쫒아오고 있었다.


멀리 약속 장소에 낯익은 얼굴이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눈에 크게 다가왔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저기요 내 남자 친구인데 가서 인사할래요?"

그렇게 묘한 기류가 흐르고 남자 친구의 얼굴은 질투인지 못마땅함인지, 일단은 셋이서 통성명은 하게 되었다.

남자 친구에게 자기소개를 당당하게 하는 이 친구... 이름이 이한열이란다. 잠실 5단지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자기 신상을 말하는 이 시츄에이션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그즈음에 나의 동네는 북아현동 굴레방다리였는데, 집안 사정상 잠실 쪽으로 이사를 가서 나도 잠실 쪽이라 그 아이와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얼떨결에 서로의 전번을 주고 그 날은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났다.

묘한 상황이 끝이 나고,  남자 친구의 얼굴은 아직도 그 불편한 상황이 기분이 나빴는지, 나에게 말은 못 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여 들어가고 있었다.

 어찌 된 거냐고 물어보길래

"미사포 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이뻐서 따라왔데" 하고 질투를 유발하는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 이뻐서 따라왔겠냐"  전혀 신앙심 하고는 거리가 먼 여자가 미사포까지 쓰고 앉았으니 신기해서 따라왔겠지 한다. 특이하던 이쁘던 따라오게 만드는 건 보통의 재주는 아니지 않은가.... 내가 좀 특이하긴 했다.


시간이 꽤 지난 후 집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나! 저 한열이에요"

그 아이는 잊었어도 이름만은 확실하게 기억했던 순간 아!!!

"근데 네가 웬일이니?"

저 누나한테 줄 게 있는데 집 근처로 잠깐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오는 거야 상관없지만 너와 나사이에 주고받을 일이 뭐 있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궁금했다.

전화를 받고 집 밖을 나가보니 그 아이가 사는 아파트 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리로 오고 있는 그 아이가 보였다.

 나를 보고 자전거를 멈추고 나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 주섬 꺼냈다.

이쁘게 비닐로 포장된 녹음된 테이프였다. 그 당시 감성에 맞게 유행했던, 이문세의 전집을 녹음을 하고 들고 온 것이었다. 수줍게 내민 그 테이프를 나는 받질 않았다. 아니 받을 수가 없었다 .

받고 나면 이 인연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끊어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차갑게 속으로는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나는 이 테이프를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고3 수험생이었고, 나이차 많은 오빠에게 남자 친구나 만나고 댕긴다고 호되게 혼나고 난 뒤라 더더욱 그럴 수 박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 친구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모질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누난 공부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없다고.  더더욱 이런 걸 받으면 부담스러우니 미안하지만 받을 수가 없다고 매몰차게 말했다. 그 당시는 고3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심리적으로 컸기 때문에, 그 아이는 다른 건 몰라도 그 날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하던 그 모습과는 달리, 순수하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더 이상 나에게 치대지 않았다. 조용히 다시 테이프를 제자리에 집어넣는다. 그 아이의 손이 참 무안해 보였다. "누나! 공부 열심히 하세요" 란 말을 뒤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해 연세대에서 모를 하다 역사적으로 이름이 남겨진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기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였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 역사적인 순간에 그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살짝 마음속에서 지나가는 살랑비처럼  기억이 나던 아이였다.  살면서 문득문득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삶이 힘들어 지칠 때 한 번 씩 쉬어 가게 만드는 기억이다.  흔한 그리움보다는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조금 지나고 나니 에이... 그 테이프는 받아둘걸 하는 후회가 되긴 했다. 그 시절 음악 듣기도 지금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생각해보니 참 내성적이고 바르게 보였던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 조금은 모질게 대한 마음에 대한 미안감이 없잖아 있었다. 17살 순수한 마음에 작은 실패를 안고 살아갈 그 친구에게 지금은 내 이름 석자도 잊고 잘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그 짧았던 인연에 대한 인연으로,  지금 어디선가 그 친구가 잘 살아가고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안부를 묻는다. 

 나의 보이지 않는 안부가 그의 인생에 살짝 불어오는 봄바람이기를 바라면서....

1987년 어느 봄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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