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seniya Aug 19. 2020

왜 그때 나는 금심이 곁에 있어 주질 못했을까?

상처는 아물지만 흔적을 남긴다.

중앙여중 3학년 3반

내가 받는 새 학기 반 배정으로 새로운 나의 중3 생활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짝꿍을 정하고 난 후 내 옆에는 통통하고 말 없는 아이가  조용히 않아 있었다. 딱 봐도 나하고는 맞지 않을 답답함이 벌써부터 내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정말로 말 없던 아이...


아이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말 많고 정신 사나운 자기하고는 반대의 아이와 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답답은 해도 맘도 여리고 착했던 금심이는,  내가 조금이라도 웃긴  얘기에 말없이 웃고  항상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었다. 항상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다른 친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수업 종이 울려야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정신 사나운 짝꿍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되다

금심이의 동네 친구인 보분이도 같은 반이 되어 앞뒤로 앉은 경희와 이렇게 우리 넷은 단짝이 되어서 어딜 가도 같이 다니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도 같이 가고 그러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에 항상 빵을 가지고 왔던 금심이는 우리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거북당 빵집 딸이었다. 금심이 엄마는 학교가 끝나고 우리들이 당신의 딸인 금심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 걸 보기 좋게 보고 있었고,  항상 가게로 불러서 우리들에게 빵을 주곤 하셨다. 말 없고 내성적인 금심이와 우리가 같이 노는 걸 보고 안심이라도 되었는지,  항상 우리들을 보면 밝게 웃으시는 분이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금심이는 착했지만  조금은 어두운 얼굴에 보이지 않는 슬픔을 갖고 있는 듯했다.


학교가 끝나면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경희네 집에 모여서 놀기 시작했고, 그 시대 사춘기 여학생들이 그렇듯이  항상 어울려 다니면서 학창 시절을 활기차고 재밌게  보냈다.

너무 착해서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보분이는 집이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항상 수업시간이 시작되고 난 후 5분씩 꼭 늦는 지각대장이었다.  길고 말라비틀어진 다리로 팔자 걸음걸이로 세상 시름이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든 보분이는,   밥을 항상 아버지 밥그릇만큼이나 큰 그릇에 담아 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잘 먹었던 친구였지만,  만성위염을 달고 있었던 친구라 항상 보분이 엄마는 늦둥이 딸의 도시락에 엄청 신경을 쓰셨다.

착하지만 엉뚱한 친구였던 보분이는 항상 내 옆을 지키는 든든한 친구였고, 나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고등학교 졸업 내내 나의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

고등학교에 와서 반이 틀렸는데도 한동안 우리반에 와서 도시락을 같이 먹어 친구들이 다 보분이가 우리 반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보분이 와는 정반대로 너무나 여성스러워서 깍쟁이 같은 인상의 경희는 좀 차가운 면을 가진 친구였다. 당최 그 속을 알 수 없는 친구였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날 그렇게 째려보다가 들킨 적도 많았다.

이렇게 우리 넷은  서로 다른 성격의 친구들이 같은 반 같은 자리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 것이다.

친구를 외면하다.

 참 신기하게도 내 주변에는 착하고 여성스러운 애들이 많았고 그 애들이 이상하게도 참 나를 많이 해 주었던 거 같았다. 생각해보면 내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았던 거 같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었나,  그러면서도 한 군데 정착을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나... 그런 나를 기다림으로 묵묵히 바라보던 친구들.

뭐 하나 특별날 것 없었지만,  항상 넘쳐나는 자신감과 시크한 얼굴과는 다르게 입만 열면 웃긴 소리를 잘해서 선생님들도 웃겨서 수업을 못 할 정도로 유쾌한 사람이기는 했다.


 항상 그렇듯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평상시와는 다르게,  금심이의 얼굴이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길래 내심 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난 이런 기류가 너무 불편해서 그 자리를 뜨고 싶었고,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머뭇머뭇거리다 입을 연 금심이의 입에선 내가 예상했던 그 불안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이 시대에 살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들이 상상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뭐랄까 아직 여성이 되기 그 이전인 상태에서 이성으로 느끼는 감정을 동성에게서도 느껴지는 과도기의 그런 감정들이,   특히나 보이시하고 톰보이 같은 아이들에게 여리고 여성적인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많이 가지기도 하는 성장기였던 거 같다.

특히, 지금은 남녀공학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당시는 여학교와 남학교가 구분되어 있는 곳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누가 나를 좋아할 것 같으면 이상하게 더 피하게 되는 심리...

그 이후로 나는 더욱더 내 자리에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러던 나를 닭 쫓던 개 쳐다보듯 그저 바라만 보았던 금심이... 그 심정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상처를 주다

이후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가운데 경희가 금심이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보았다.  

얄미운 경희였지만 우리 누구도 말 말릴 수가 없었다.

금심이의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신걸 우리는 오랜 동네 친구인 보분이를 해서 우린 알고 있었지만, 경희는 금심이가 아빠가 미국에 있어서 자주 못 온다고 거짓말을 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경희는  집요하게 금심이의 가장 뼈아픈 비밀을 기필코 금심이의  입을 통해서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 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친구를 말리지 못한 우리도 같은 공범자였다.

아직 가슴 한편에 왜 말리지 못하고 동조하였을까? 금심이가 얼마나 슬펐을까?

오죽하면 그렇게 말했을까 싶은 게 그땐 우리가 너무 어렸다고 변명해보지만,   부모 잃은 슬픔을 그 나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크나큰 상처라는  걸, 시간이 흘러 우리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 상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너무나 가혹하게 한  친구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거 같았다.


그 날 이후 우연인지 모르게 금심이는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고 ,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이 된 우리 셋과는 달리 금심이는 다른 곳으로 학교를 가는 바람에  더욱더 우리 사이를 벌어지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금심이가 느꼈을 그 서늘한 소외감을 우린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졸업을 하고  학교는 달랐지만 여전히 같은 동네를 살았기에,  무심코 길에서 만난 금심이는 새로운 친구와 어울리고 있었고, 그 친구들의  조금은 평범하지 못한 낯선 모습과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  금심이의 얼굴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때늦은 사과

지금은  금심이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지만 부디 나보다 더 나은  살고 있기를,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작은 복수라도 하고 살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금심아!!!

그땐 우리가 너무 어렸었다고 변명을 해 보지만 , 그래도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너의 슬픔을 보듬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바람에 흩날려 이 말이 나의  어릴 적  나를 좋아해 준 친구 금심이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기억하는 그는 아직도 24살 청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