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by kseniya

엄마는 독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나 그 독함이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한 가면이었다는 걸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와 엄마는 상극이었다. 나는 엄마가 싫었고 엄마는 나를 미워했다.


어릴 적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장남의 대한 기대는 다른 자식에 비해 하늘과 같은 것이었다. 엄마에게도 모든 것에서 남다르게 잘난 아들이 삶의 희망이자 등불이었다.

아들에 대한 모든 관련된 것들이 삶의 우선이었고 그 외에 것들은 삶의 언저리에 내쳐졌다.

언니는 유독 몸이 약해 엄마는 약한 몸이 자신의 죄인양 언니의 모든 수발을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신은 무심하게도 나에겐 너무나 건강한 몸과 정신을 주었다. 그 건강함이 엄마에게는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장남에 대한 실망감을 느낀 날에는 나에게 화풀이를 했고, 언니와 둘이 다툰 날에는 모든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생각해보니 맷집도 좋았던 거 같다. 그 맷집에는 나의 말발도 한 움큼 거들었다.

툭하면 나를 때렸던 엄마! 그 매질이 빨리 끝나기 위해서 어린 나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그 어릴 적,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비굴함에 굴복한 나의 성격이 자라면서는 억울한자의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정의감으로 바뀐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어린 시절 보리쌀을 먹어 본 적이 없어 보리쌀이 입에서 뱅글뱅글 돌아 쌀밥만 먹었던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간다고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동네의 서늘하고 깍쟁이 같았던 미인인 엄마는 미인 박복하다는 걸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였다.

법 없이도 사는 세상 호인인 아버지 그러나 세상 잣대로 볼 때는 한없이 나약했던 아버지를 대신해서 엄마의 삶은 분명히 무거운 짐 덩어리였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싸울 힘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강직했던 아버지는 비굴한 만족보다는 정직한 결핍을 택했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의 경제적인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파노라마다.


오빠는 엄청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도 고등학교 담임이 꼭 홍대 미대를 보내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아 뒷받침을 해 줄 수가 없었다. 훗날 오빠의 원망 섞인 소리에 엄마는 늙어 정신이 혼미해지는 지금까지도 그 미안함에 깊은 탄식과 함께 얘기한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도 홍대를 보냈어야 했다고..

그 정도로 오빠의 예술적 끼는 상당했다. 오빠는 지금도 그 재능을 일이 아닌 취미로 조용히 삭히고 있다. 오빠의 그림과 오빠의 필체를 보면 지금도 드는 생각이다.

아!!! 너무 아깝다.


점점 내 머리는 커지고 엄마의 손 은 약해져 가면서 나는 엄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엄마가 뭘 알아 " 하고 톡 쏘아붙이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나에 대한 손찌검은 아버지와의 대립과도 이어져서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경멸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막내딸이 엄마의 화풀이가 되는 거에 측은함과 그 원인이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버지는 나를 더욱 감쌀 수밖에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그렇게 똘똘 뭉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엄마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삶의 시련으로 고통받을 때 엄마는 말없이 그 긴 시간을 내 옆에 있어주었고, 어린 시절 내가 그 모진 매를 이유 없이 견뎌내듯이 나의 역정을 말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 시간으로 나에게 속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언니의 결혼식날 식장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었던 아버지가 나의 결혼식에서는 실신하지 않을까 온 식구들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의 결혼식에 아버지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연신 싱글벙글하셨다. 잘 생긴 사위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거다 특히 코가...ㅎㅎㅎ

옛말에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더니만 그 코에 속은 것도 모르고 말이다.

오히려 내 결혼식에서는 엄마가 서럽게 울었다.

냉정하고 차갑던 울 엄마가 땅이 꺼져라 운다.

잘못한 것도 없는 애를 이유 없이 때렸다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방패막이였다고.... 그때 자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사실 그때 엄마가 많이 아팠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한 날 엄마의 서글픈 눈동자를 본 적이 있었다. 무심한 듯 처연한 그 모습이 그때는 무슨 의미인 줄 몰랐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니 갱년기가 아녔을까 싶다. 지금에서나 갱년기 갱년기 하지만, 우리 엄마 시대라고 갱년기가 없었을까? 단지 삶의 고단함이 그 힘든 갱년기도 파묻어 버렸을 거라 생각하니 애잔하다. 우리 시대의 중년은 그래도 소리라도 낼 수 있으니 그나마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엄마의 그 요란한 고백에 나의 탁 막혔던 엄마에 대한 감정이 장마 날 내리는 빗줄기 마냥 시원하게 벗겨주었다.


그 이후에도 나의 결혼 생활이 힘들면 나는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엄마가 이렇게 그때는 힘들었겠구나.

갑자기 우리 삼 남매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나의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알고 보니 엄마는 우스개 소리도 잘하는 이야기보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한 번씩 말문이 터지면 옛날 얘기를 조근조근 해 주는데 그렇게 유머러스할 수가 없다.. 아!! 내가 엄마 딸이 맞구나. 아버진 말은 잘하지만 유머가 없었는데...

지금은 엄마는 쌈짓돈 까지도 긁어모아 보내주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안부 전화를 하는 딸이 되어있다.

그저 감사하다 나의 엄마가. 그 모진 세월을 잘 견뎌주어서...

그리고 그때 내가 엄마의 작은 방패막이가 되어 엄마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이 견디기 쉬었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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