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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Jul 23. 2020

어차피 가는 길 고행처럼 가지 말고 여행처럼 가보자

2. 가도 가도 끝없는 황야의 무법지 텍사스

 멕시코와의 국경도시 엘파소


 무스름하게 변한 물가를 나와 하루 종일 물놀이로 지친 아이들을 데리고 피닉스로 돌아와  예정대로 출발을 할 수가 없어 하룻밤을 더 묵고 아침에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내일 떠나는 곳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다.

한 주의 땅 크기만으로도 한나라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광활한 텍사스는 아침부터 달려도 오후 늦게나 겨우 우리가 가야 할 도시를 만날 수 있어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사막의 회오리바람을 가르고 서부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장면  그대로 황량한 사막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미국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항상 아쉽고 그리운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미국도 고속도로 중간중간 rest  area 가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졸음을 쫓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곳일 뿐 우리나라처럼 온갖 음식들을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나마 밴딩 머쉰으로  가벼운 스낵이나 음료수 정도를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텍사스로 들어서는 순간  다른 주와는  차별되게 다른 엄청난 규모의 게스 스테이션 편의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텍사스에서만  볼 수 있는 편의점의 특성상 그 지역 특산물인 비프 저키까지 가져다 놓고 팔고 있었다. 심지어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먹던 그 구슬 아이스크림의 맛을 못 잊었던 막내의 얼굴에서도 진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만큼이나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편의점의 규모에 어울리게 사람들도 엄청 바글바글 거려

모처럼 황량한 고속도로 위에서 가뭄의 단비를 만나듯  무료하게 달려오느라 가슴이 답답하던 것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빌려온 사진임을 밝힙니다)

각자 개인 용무를 보고  남편이 좋아하는 비프 저키를 사 들고 차에 올라타 또 가던 길을 간다.

우리가 가야 할 국경도시 엘 파소는 도시 이름이 말하듯이 예전에는 멕시코 땅이었던 곳으로 지금도 멕시코 사람들이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텍사스 쪽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도시다. 멕시코와 접한 국경에 인접한  대부분 도시가 그렇듯이 여기가 멕시코인지 미국인지 정말 구분도 안 가리만큼 멕시칸들이 많다. 참고로 울 애들 둘도 멕시코에서 태어난 멕시칸들이다.ㅎㅎㅎ

사막도시답게 모래 발 풀풀 날리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숨이 탁 막히는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더해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렸.

우리가 이 곳을 텍사스에서 첫 방문지로 정한 이유는 이 곳과 뉴멕시코 남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에 유명한 두 명소인 화이트 샌드와 카스배드 동굴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나중 두 군데의 동선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오히려 뉴멕시코의 대도시인 앨버커키를 들렀다 반대로 두 군데를 다니는 것도 더 좋을 뻔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들 어떠한가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길일뿐인걸......

모처럼 초저녁에 모텔을 들어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 가 볼 곳의 인포를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내일의 또 다른 세상의 볼거리는 어떨지 궁금함을 지닌 채 잠이 들었다.


3. 신비하고 감탄스러운 자연을 가진 뉴멕시코


세상의 새로운 하루가 열렸다. 나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다.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기에....


단순하지만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화이트 샌드.


엘파소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을 향해 뉴멕시코주 남 부로 출발했다.

어찌 보면 오늘 둘러볼 두 거대한 자연의  국립공원이

대륙횡단의 백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대한 자연 앞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으며 우리가 가는 길 위의 여정에 포함된 운명의 길이 아니었으면 평생 가 보지 못 할 곳이라는 생각에 벅참이 올라온다.

자연에 감사한 하루였다.

뉴멕시코주로 들어서려던 순간  국경수비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국경도시라는 지리적 위치의 특성상 경비가 삼엄하여 미국 사람도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 차를 보내주는  곳이다. 남편과 우리들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난 후 차 을 검색하더니 무사히 통과시켜주었다. 차를 달려 도착해보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다. 이 곳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칼스배드 동굴을 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두른 결과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픈 시간이 났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 날 따라 미사일 발사시험이 있는 날이라 그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화이트 샌드 인근에는 우주항공 기지국과 공군 기지가 있어서 수시로 시험이 있다고는 했다. 기다리다 지친 관광객들은 주차장에서  하나둘씩 차를 돌려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오기를 부리기보다는 지금 아니면 다시 오기 힘들 거란 생각에 1시간만 더 버텨 보기로 했다. 여행은 가능한 할 수 있을 때 해야 후회가 생기지 않는 법이다. 엄마의 오기에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은 지겨움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지만 엄마의 단호함에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한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입구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차례로 차를 들여보냈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곱디고운 눈밭은 어쩌면 눈보다 더 고운   석고로 생성된 세계 최고의 석고 사막이다.

하늘색과 흰색의 단 두 가지 자연의 색이 어내는 그림은 예술이었다.

눈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언덕지역에는

 이미 애 어른 할 것 없이 플라스틱 썰매를 하나씩 머리 위에 올려놓고 시원스럽게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아이들과 편도 선물가게서 하나씩 사 들고 온 썰매를 이고 올라간다.

어딜 가도 사진은 예술이다. 한 여름에 눈 밭에  구는 것은 뙤약볕에 내리쬐는 태양빛에 의해 발을 닫기힘들 정도로 뜨거웠지만 기분은 한겨울에 눈을 밟는 것처럼 상쾌했다. 두 아이와 아빠는 열심히 썰매를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차 안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큰 아들이 자꾸 신경 쓰여 억지로 차에서 내려오라 해도 끄덕을 안 한다. 한 장이라도 좋은 곳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엄마의 마음은 속마음과는 달리 오장육부가 터지듯 우악스럽다. 어떻게 해서라도 같이 즐기게 하려고 억지로 차의 시동을 꺼 봤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냥 확 여기다가  내려놓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내 속을 뒤집는다.

여행 내내 마음 쓰였던 큰아들.... 항상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아이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 지나칠 수가 없다.

나의 아들이고 그 아들의 엄마라서...

썰매도 타고 사진도 마음껏 찍고 나니 이 곳에선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눈밭이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질 무렵 석고 사막에 비추는 그림자 같은 작품 사진이 잘 찍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다음 장소인 칼스배드 동굴이 있는 곳으로 출발을 해야 했다. 

사방이 온통 하얀 사막을 뒤로하고 공원을 나서는 순간 지금까지 꽉 막혀있던 답답함이 통쾌하게 날아가 버린 느낌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계속 이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의 그 상쾌함이 다시 느껴진다.

누가 나에게  여정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 곳에서의 장면이 아닐까 할 생각이 들 정도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칼즈배드 동굴  국립공원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도착한 세계 최대의 동굴 국립공원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다다르기 전부터 동굴의 어두운 기운을 자랑하듯 주변 날씨도 우중충하니 그다지 달갑지 않은 날씨가 주변의 공기를 에워싸고 있었다.

다른 국립공원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가장 처음 들리는  비지터 센터는 깔끔하게 박물관 형식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전시관 형태로 이루어진 여기저기 걸려있는 사진들은 이 동굴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동굴로 들어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지하 750 미터까지 뚫려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내려가는 방법과 natural entrance  즉, 걸어서 직접 입구를 통해 내려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편한 길을 찾기보다는 가슴속에 하나라도 더 담아 가기 위해 걸어가는 쪽으로 택했다. 센터 뒤 쪽으로 난 문을 통해 사람들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옛날 고대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인 돌로 만들어진 원형극장이  입구를 향하여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낮에는 자신의 종적을 감췄다가 밤이 돼서야 먹잇감을 찾으러 동굴을  나서는 박쥐들의 비행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는데 밤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그 광경은 볼 수가 없었다.

선택의 짜릿함이 이런 것일까?

거대한 생선의 아가리를 연상케 하는 동물의 입구는 마치 악마의 소굴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선형으로 된 길들로 점점 작아지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동굴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장소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본격적으로 동굴 투어가 시작되고 동굴 안은 어두웠지만 생각보다 넓은 동굴 안은  두 갈래 길을 만들어 내리막길과 오름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동굴 투어를 마치고 오름길을 택한 사람들은 비교적 적었다. 동굴의 특성상 단조로움의 연속이 결국은 편한 하게 되어 있어 우리도 올라갈 때는 하에 설치되어 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지하 750 미터 밑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엄청나게 의미부여를 할 수 있지 않나?

샌드 화이트에서 사람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만들고 시체 놀이하던 큰 아들도 이 곳에서는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얼굴이다. 밝은 곳에서의 자신의 노출의 부담스러움이 어두운 곳에서는 좀 더  안심되었던 걸까? 아무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큰아들의 팔짱을 끼고 엄마가 아들에게 아양을 떤다. 치사하지만 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구러진다면야 그 앞에서 춤인들 못 출까? 그런데 왜 치사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들까... 또다시 울컥해진다. 마음을 다 잡아야지... 아들의 손을 한 번 더 꼭 쥔다. 내 품 안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우리가 이제껏 가 보았던 좁고 어둡고 답답했던 동굴 투어와는 달리 넓고 안전하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이 곳은 답답하기보다는 오히려 쾌적했다. 동굴의 특성상 어두운 거야 당연하지만 다양한 조명으로 각자의 명소들을 비추고 있어서 오히려 쾌적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연식에 비해 낡아버린 엄마의 몸은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눈까지 좋은 아이들은 어두운  동굴 안에서 펄펄 날았다. 아이들이 내 시야에 멀어져서  보이지 않아도 조급함이나 불안한 마음은 없다. 길은 여러 길이나 나가는 길은 하나뿐이니 어떻게든 만나지겠지.. 오랜 여행의 경험이다. 더 중요한 건 돈 가방은 나에게 있다는 거....  지친 다리를 이끌고 가다 보니 저만치 장소에서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엄마는  본능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의 표정은 얼떨결에 습격당해 방어할 시간조차 없는듯한 무방비 상태의 표정으로 내 사진기에 응해준다.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한 사람의 인생에도 여러가지 스펙터클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데 앞으로 아이들의 인생은 얼마나 다양한 파노라마가 펼쳐질지 사진 속의 수많은 표정이 말해준다.

사실 동굴 투어는 지질학자들에게나 유용하지 나 같은 조무래기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돌이 그 돌 같고 거기가 거기 같았다. 동굴의 마지막 코스까지 다다르자 큰 원형 같은 평지가 나왔다. 언더그라운드 샌드위치 룸아라는 곳이였다. 이름대로 이 곳에서 선물가게나 음료수를 사 먹을 수 있고  필요한 것들이 지상에서와 같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 곳에 설치되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 투어는 끝이 난다. 이 밑으로도 동굴은 계속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여기까지만.. 더 이상 갈라 그래도 못 가겠다.

화장실을 간 아이들을 기다리느라고 앉아서 지친 다리를 천천히 뻗었다. 문득 나는 왜 여기까지 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온 거리 보다 훨씬 더 많이 가야 만나는 내 미지의 인생에 대해서 또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따라나섰지만  나 역시도 불안한 마음을 한시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가슴속까지 스며들어 나를 더 처량하게 만들려는 순간에 아이들이 다가와 다시 가슴 한 구석에 처량했던 마음을  꾸깃꾸깃 집어넣는다.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가 않아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제한된 인원만 엘레베이터에 탈 수 있기에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탈 수 있게 기다렸다 타고 올라갔다. 밖은 이미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서 차는 다시 텍사스 쪽으로 방향을 돌려 휴스턴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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