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우개

아이러니를 내려놓다

by Susie 방글이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 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주부터 연재 시작이었다.

기획을 세우고, 의도를 정하고, 방향까지 잡았다. 글도 세 편이나 썼다.

그런데 남편이 무심코 물었다.


"이 글들이 처음 기획의도와 맞아"?


그 질문에 나는 멈춰 섰다.

처음의 마음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어느새 내 처음 의도와는 멀리 가고 있었다는 걸, 그 질문이 깨닫게 해 줬다.


나는 대단한 기획자도, 전문 작가도 아니다.

내가 뭘 써도 세상에 큰 타격을 주진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지 글의 재미를 위해, 솔직한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내 생각과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며 스스로 만족을 느낀다.

그게 나에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세 편이나 쓴 글이 아깝게 느껴졌다.


마치 반죽한 쿠키를 오븐 앞에서 버리는 기분이었다.

쌓아 올린 문장들이 허물어지는 순간, 긴 등산을 한 것처럼 허벅지에 힘이 빠지며 맥이 풀렸다.


하지만 여기서 고집을 부린다면 어떨까.

이미 써놓은 글이 아깝다고 억지로 연재를 밀어붙이면, 내 기획과는 다른 길로 간다.

그렇게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솔직한 글을 쓰려던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되지 않겠나.

그건 아이러니 아닌가.


인생도 그렇다.

우리는 자주 잘못 오른 산길에 서 있다.

"여기가 맞나?"싶다가 도 한참 올라와 버리면, 내려가기 아까워 괜히 더 올라간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은 정상이 아니라 옆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결국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서 허벅지가 욱신거리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간장을 잘못 넣었다고 해보자.

애써 고기를 더 넣고, 물을 더 붓고, 이것저것 손봐도 맛이 애매하다.

그럴 땐 인정해야 한다.

"오늘은 실패. 내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번 틀어진 맛은 억지로 되돌리기 어렵다.


퍼즐도 그렇다.

마지막 조각이 안 맞는 걸 억지로 끼우면 전체 그림이 삐뚤어진다.

그럴 땐 다시 펼쳐놓고, 처음부터 맞춰야 한다.


글도 다르지 않다.

세 편이나 썼지만, 방향이 틀어졌다면 미련을 접어야 한다.

다시 기획하고, 다시 brainstorm 해야 한다.

아깝다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건, 내 글이 아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인생도 Ctrl+Z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인생은 저장도 안 되고, 오타도 자동 수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지우개는 내 몫이다.

돌아가고, 고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아깝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더 단단해진다.

그게 글쓰기이고, 그게 인생이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깨달았다. 서두르거나 아까움에 얽매이면 길을 잃기 쉽다.

조금 더 구상하고, 내 마음에 솔직한 이야기를 단단히 준비해 돌아오겠다.


브런치에서 독자님들과 재미와 진심을 나누는 순간을 위해, 새로운 연재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아까움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고집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64B142B5-0B12-43CB-B908-5D3A49DBA0F5_1_102_o.jpeg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깝다고 붙잡은 순간보다, 새로 시작하는 용기가 더 빛나는 거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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