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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에는 크림을 안 넣습니다

우유는 라떼에게 양보하세요

by Susie 방글이




나는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 밥 냄새보다 빵 굽는 냄새에 더 설레고, 밥그릇보다 접시에 올려진 크루아상에

더 눈길이 간다. 남들은 '밥심으로 산다'라고 하지만, 나는 '빵심'으로 산다. 특히 그 빵 옆에 커피가 없으면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입안에서 조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단골 멘트가 있다. 길을 걷다 빵, 케이크, 샌드위치를 봐도, 심지어 TV속 음식이 나와도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커피랑 먹으면 맛있겠다!"


내가 버릇처럼 "커피랑 먹으면 맛있겠다" 하니까, 이젠 남편과 딸도 장단을 맞추다 못해 아예 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된장찌개를 먹으며, 남편이 한 숟갈 뜨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음… 이거 커피랑 먹으면 맛있겠지?"


내가 눈을 흘기자, 딸이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한마디 얹는다. 앞에 된장찌개를 두고는 코를 살짝 찡그리며,

"아아랑 딱이네~ 바게트 하나 곁들이면 완벽하겠다~" 하며 둘이 너무 재미있어한다.

내가 괜히 흘겨보며 "아이고, 진짜!" 해도, 이미 우리 유머 코드가 되어버렸다. 이상한 커피사랑 아줌마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빵을 먹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건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빵을 먹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식탁은 이제 빵보다

커피가 먼저 올라오고, 빵은 커피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한다. 커피 한 잔에 좋아하는 아몬드 크로와상 하나 곁들이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참 소소하고 저렴한 행복이 아닐까.


사실 커피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나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는 방법이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한 잔의 커피에 마음을 녹이고, 작은 빵 한 조각에 행복을 느끼며,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조합을 외친다.


문제는 이렇게 좋아하다 보니 커피값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매번 카페에서 라떼 한 잔,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 값을 계산해 보고 결심했다.


그래, 집에 홈카페를 만들자.


공간도 마음도 채우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기로 마음먹고 알아보는데, 처음엔 기계값이 왜 이렇게 비싼가 싶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어차피 먹을 거면 맛있게 먹자' 하고 질러버렸다. 처음엔 기계 만지는 것도, 원두 고르는 것도 낯설었는데, 어느새 내가 원하는 맛, 향, 산미, 바디감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지인이 선물해 준 덕분에 알게 된 것이 바로 '게이샤'라는 커피였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어? 일본 게이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커피 품종 이름이었다. 비싸기로 유명한데, 향과 맛이 기가 막히다. 비싸서 마음만 먹고 주문을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집에서도 웬만한 카페 못지않은 커피를 만들어 먹으니, 돈도 아끼고 행복도 챙긴다.




그렇지만 살면서 어떻게 집에서만 커피를 마시겠는가. 외출하거나 지인들과 만날 때는 스타벅스나 카페를 자주 찾는다. 미국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아주 개인적인 의식 같은 거다. 스타벅스에 가서 주문할 때도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에 크림 조금, 설탕 반 스틱, 시나몬 가루 톡톡.” 이렇게 커스텀 주문하는 게 당연하다.


커피가 나온 후에도 테이블 한쪽에 있는 크림, 우유, 설탕, 시럽 등을 자기 입맛대로 더 첨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간혹 테이블에 따로 놓여있지 않은 카페에서도 우유나 half & half(크림)을 달라고 하면 앙증맞은 작은 컵에 담아주기도 한다. 거기서 또 나만의 맛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여행 중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여기에 크림이나 우유 좀 넣을 수 있나요?” 했더니, 직원이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아메리카노에는 크림을 안 넣습니다. 그러면 라떼를 드셔야 해요".


순간, 아… 맞다. 여긴 한국이지.


뜨아 노 크림 노 슈가는 사랑입니다


그날 내 안의 작은 미국이

'아… 거기다 크림 넣으면 진짜 맛있는데…'

하고 조용히 투덜거렸다는 건 비밀.


미국에서는 당연한 일이 한국에서는 뭔가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의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만 더한 진한 커피라, 여기에 뭘 첨가하는 건 그 맛을 해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번 마시다 보니 또 그 진한 맛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한국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기보다, 그 공간 자체를 소비하는 문화다. 커피 한 잔 값에 인테리어, 음악, 조명, 분위기까지 포함돼 있는 느낌이랄까.


감성 만점 부산 감천마을


미국에도 지역마다 나름 '힙'한 카페들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커피는 주로 '카페인 섭취'가 목적이다. 그래서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 들러 커피를 받아 차 안에서 마시거나,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일하며 쭉쭉 들이키는 게 보통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미국에 오셨을 때, 출근길의 사람들이 커피 한 잔씩 들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참 인상 깊다'는 표현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미국에서 커피는 '아침 문화'의 일부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스타벅스를 제외하면, 카페들은 오전 5시쯤 열어 오후 2~3시면 문을 닫는다.


반면 한국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단순히 커피를 마신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공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자는 뜻이다. 커피는 핑계일 뿐, 중요한 건 사람과의 대화와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국은 밤늦게까지 카페들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커피가 목적이 아니라 만남과 대화가 목적이니 당연한 일인듯하다.


또 신기한 건, 미국에서 ‘아이스커피’라 하면 달달한 시럽 과 크림이 듬뿍 들어간 음료가 인기인데, 한국에서는 '아아' 즉,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국민 음료라는 것이다. 일명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런 말을 들었다.

"겨울엔 손이 시려야 커피 마신 거지"라고.


나도 어느새 그 문화에 스며들어, 한국에선 크림도 시럽도 없이 아메리카노 본연의 맛을 즐기게 됐다. 그러다 미국에 오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크림을 타기도 하고 그냥 블랙으로 마시기도 한다.


문화는 이렇게 흘러 흘러 한 정착지에 안착되면 그 환경에 맞게 수정되고 변형되어 머문다.

또 어디론가 영향을 주고 흘러간다. 이게 바로 문화다.

같은 커피라도 나라, 공간,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경험하고 익숙해지고, 때론 바뀌기도 하는 것.


어쩌면 한국에서도 언젠가

"아메리카노에 크림 좀 부탁해요" 했을 때

"네, 원하시면 드릴게요"라고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나도 그때그때

그 공간과 사람, 분위기에 맞게.


빵보다 뷰. 오늘은 마을 풍경이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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