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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가족, 누가 뭐랄까

'김치 장인, 생색 장인'과의 동거

by Susie 방글이


우리 집은 뭐든 뒤바뀌어 있다.


남편이 살림을 하고, 딸이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고, 나는 커피 잔 하나 들고 공주처럼 산다.


이 모든 건 남편이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서 뜻밖의 전업주부(?)가 되면서 시작했다. 처음엔 라면도 퉁퉁 불게 끓이던 그가 '김치'를 담갔다.

양념 국물이 배추보다 많아 ’이게 김치인가 국인가’ 싶었지만, 묵묵히 먹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 그는 김치 장인으로 거듭났다. 남달리 손재주가 좋고 일머리가 있는 남편이다. 김치를 맛본 친구들이 "우리도 같이 김장하자!"며 요청해, 결국 우리 집이 김장 본부가 됐다. 김장하는 내내 남편은 "소금 농도는 이 정도" 라며 큰소리로 지휘했고, 그의 김치 만들기 강의는 쭉 이어졌다.




친구들은 말 잘 듣는 학생들처럼 ‘네~네 세프님!"

"오, 이번엔 좀 칼칼하겠는데요." 했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웃음을 참았다.


지인들이 "김치 진짜 끝내준다!" 감탄하며 김장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 마치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살짝 콧대를 세우면서 스케줄 보겠다고 하는 내 모습에 남편은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고생은 남편이 다 하고 난 옆에서 친구들한테 생색내기 바쁘다.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다.


딸은 우리 부부 체력 코치다. 소파에 앉아 팔짱 끼고 눈을 흘기며 말한다. "아줌마, 근력 운동 했어? 안 하면 근육 빠져!” "아저씨, 단백질 안 먹으면 쭈글쭈글해, 스쾃 몇 개 했어?" (딸은 우리를 자주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른다.)

혼자 있을 땐 뭐든 척척 잘하면서, 집에만 오면 손 하나 꼼짝 안 하고 뒹굴뒹굴 누워 이러쿵저러쿵하는 딸 말에

나는 들은 척 만 척하고, 남편은 냉장고 문을 열며 "오늘 저녁은 뭐야?" 하며 슬쩍 내게 미룬다.


하지만 주방은 그의 세상이다.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다. 한국에서도 딸에게 아웃백 빵 & 버터, 납작 만두 구워준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같은 아파트 바로 아랫집에 계신 어머니가 먹여 키우셨다.

요즘도 가끔 요리를 시도하면 딸이 놀린다. “엄마, 그 빵이랑 만두가 그리워~.”

남편은 그 틈에 "이제 좀 해라" 하며 주방을 넘기려 하지만, 난 주부가 싫다. 대신 김장날엔 내가 "이 김치 진짜 맛있다!" 감탄하며 분위기 띄우는 역할은 톡톡히 한다.


요리도, 살림도 영 젬뱅인 내가 남편 덕에 친구들 초대해 밥상을 차린다. 남편이 요리하는 잡채, 김치찜, 불고기, 해물찜, 감바스, 스파게티 등에 친구들 입이 호강하고 나는 옆에서 뿌듯해한다. 내가 한 거라곤 테이블 세팅 정도인데.


주방에서 쩔쩔매지 않고 이렇게 생색내며 사는 삶, 이거 꽤 괜찮다.



커피와 와인 향 속에 김치 냄새가 섞인 우리 집,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뭘까. 오늘도 커피잔을 들고 생각한다.

김장까지 접수한 남편, 잔소리도 프로급인 딸, 그리고 생색 여왕 나.


이 엉뚱한 집안, 그냥 이대로 살아도 꽤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 가족은 뭐든 뒤바꾸는 게 제일 잘 어울리니까.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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