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집을 짓고, 밤엔 도토리를 숨기는 사람들
"잠깐만."
산책하던 남편이 갑자기 방향을 튼다. 아직 다 녹지 않은 눈이 숲 가장자리에 얼룩처럼 남아 있다. 겨울이 물러난 자리마다 쓰러진 나무들이 드러난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쪼그려 앉아 마른 가지 하나를 들어 올린다. 손바닥으로 결을 쓸어보고, 끝을 가볍게 바닥에 툭 친다. 잠시 고개를 기울인다. 나무의 상태를 묻는 사람처럼.
어깨 위로 가지를 올리자, 낮의 비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늘 생각한다. 아, 우리 집 비버가 또 재료를 발견했구나.
그는 목공을 한다. 남들 눈엔 그저 쓰러진 나뭇가지지만, 그의 눈에는 책갈피가 되고, 작은 의자가 되고, 언젠가 거실 한쪽을 채울 무언가가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톱밥 냄새가 옷에 배어 있고, 손끝은 거칠어져 있다. 낮의 그는 그렇게 하루의 흔적을 하나씩 남긴다.
밤이 되면 그는 전혀 다른 동물이 된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그는 겨울에는 가죽 소파 위에 이불을 펼친다. 여름에는 시원한 가죽이지만, 겨울에는 차갑기 때문이다. 모서리를 꾹꾹 밀어 넣고, 주름을 펴고, 다시 가장자리를 정리한다. 틈이 생기면 그냥 두지 못한다. 마치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숨기는 다람쥐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비버람쥐라 부른다. 낮에는 묵묵히 구조물을 쌓는 비버, 밤에는 도토리를 숨기듯 집안을 챙기는 다람쥐.
딸은 엄마 아빠 놀리기를 즐긴다. 특히 나이가 드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자기도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은 늘 슬쩍 빼놓는다. 덕분에 나는 처음엔 거북이라 불렸다. 맡은 일은 묵묵히 끝까지 해내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딸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제 늙은 거북이네?"
그 말이 줄어 '늘북이'가 되었다.
나는 느린 사람이 아니다. 대신 끝을 본다. 글을 쓰다 막히면 덮어두지 않는다. 저장해 두었다가 다시 열고, 한 문장을 몇 번이고 고친다. 다 써놓고도 다음 날 다시 들어가 문장을 다듬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통째로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
시작한 일은 그냥 두지 못한다. 완성해 놓아야 비로소 내려놓는다. 등딱지 대신 책임감을 지고 사는 기분.
딸은 돼지다.
살이 쪄서도 아니고, 많이 먹어서도 아니다. 정확히는 어떤 행동 때문이다.
뜨거운 찌개나 국을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는다. 우리는 아직 후후 불고 있는데, 딸은 이미 도전한다.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남편도 나도 안 하는 탄식을 짧게 내뱉는다.
"으— 시원해."
그 소리가 묘하다. 마치 배부른 돼지가 낮게 꿀꿀거리듯, 저절로 새어 나오는 본능에 가깝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날 국의 간이 어떻든, 온도가 어떻든, 우리는 이미 안다. 아, 오늘도 제대로구나.
집에 같이 살 때, 하루에 한 번은 꼭 묻는다.
"오늘 뭐 먹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을 생각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을 계획한다. 메뉴는 그녀의 하루 일정표다. 한 번 먹은 걸 다음 끼에 또 먹는 건 탐탁지 않아 한다.
오늘의 행복은 오늘 새로워야 한다는 사람처럼. 그래서 영원한 돼지다. 음식 앞에서 기쁨을 숨기지 않는 사람.
빼꼼이는 인간이라고 믿는 작은 강아지다. 밤이 되면 침대에 올라와 우리 사이를 가로로 눕는다. 아기가 엄마 아빠 사이에 눕듯, 그는 온몸으로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는 살짝 비집고 자리를 만든다. 털을 비비적대며 몸을 비틀고, 꼬리를 살짝 흔든다. 그 모습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 아기, 울 애기… 결국 '우래기'가 되었다. 우래기는 사람보다 사람다운 습관을 가지고 있다. 옆에 꼭 붙어 있어야 안심하고,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누워 주변을 살피기도 한다. 간식이 필요하면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전달한다. 집 안에서만 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우리 집에는 별명이 참 많다.
비버람쥐, 늘북이, 영원한 돼지, 그리고 우래기.
밖에 나가서는 쓰지 않는 이름들이다. 집 안에서만 통하는 언어다. 습관과 표정을 알고, 작은 행동까지 오래 지켜본 사람들만 붙일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놀리는 것 같지만, 사실 누구보다 자세히 보고 있다.
어깨에 나무를 메는 모습, 이불 끝을 정리하는 손끝, 냉장고 앞에서 잠시 멈추는 표정까지. 별명은 장난처럼 시작됐지만, 결국은 이런 말이 된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 우리는 그걸 알고 있어."
오늘도 우리 집에는 동물들이 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며 웃는다. 그 웃음이 조용히 말해준다.
우리는 가족이라고.
오늘은 잠깐 쉬어 가는 글이다.
세상이 조금 어지러울 때, 집 안에서만 통하는 이름들을 떠올리면 다시 웃을 수 있으니까.
독자님들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지요. 각자의 집에도 그런 이름 하나쯤은 분명 있을 테니까요. 생각보다 금방 떠오르실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