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앞에서 해부학자가 되다

외과의사급 손을 가진 남자

by Susie 방글이




꽁치를 구웠다.

꽁치를 사 와 소금 간을 해놓고, 다음 날 저녁에 노릇하게 구웠다. 생선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남편은 아침부터 부엌을 오가며 신이 났다.


"오늘 저녁은 이거다!"


그에게 꽁치는 반찬이 아니라, 일종의 작품이었다.


식탁 위에 꽁치가 올라오자, 다른 반찬은 존재감이 사라졌다. 남편은 다른 반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고 꽁치에만 집중한다. 접시 위에는 어느새 순결한 살점만 남아있고, 실가시 하나 남아있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거의 예술에 가깝다.


누구 집에 초대받아 생선이 반찬으로 있으면, 나는 조용히 남편에게 속삭인다.


"다른 요리들도 같이 먹어야 해. 집주인에 대한 예의도 지켜야 하니까."


하지만 남편은 이미 눈빛부터 생선 모드라, 내 말은 거의 흘려듣는다.


'여기에 해부학 실력 뽐내러 온 게 아니야!'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늘 같은 말을 한다.

“외과의사 했어야 했는데!”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다.


잔가시 하나도 놓치지 않는 장인 정신. 이 정도면 꽁치도 수술 동의서 필요할 듯.


손끝에서 살아나는 디테일, 눈으로 확인하세요


생선 패밀리 대잔치! 남편의 해부학 실력 발휘 기다리는 중


이 날도 생선 앞에서 집중력 100% 발휘 중


연필을 깎는 모습도 그렇다. 손으로 깎는 연필 끝은 전동 연필 깎기보다 더 정교하고, 뾰족하며 매끈하다. 딸이 학교 다닐 때는 연필을 아빠에게 맡기고 깎아 달라 부탁할 정도였다.


목공 같은 섬세한 작업도 잘해, 작은 모서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손끝에서 살아나는 디테일이 사람을 감탄하게 만든다.


나는 남편의 해부학 덕분에 생선을 좋아하게 됐다. 결혼 전에는 생선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가시 발리는 게 귀찮고 어려워서 안 먹었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나도, 딸도, 발라놓은 생선만 골라 먹는다.


남편 자신도 가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의대를 갔어야 했는데."
"외과의사 됐으면 진짜 잘했을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럴 법도 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손이 워낙 섬세하니까.


전동보다 더 뾰족하고 매끈하다… 딸이 맡긴 이유가 여기 있다


캔들 홀더 하나에도 살아 있는 섬세함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인생에는 하나씩 이 있다.


그의 적은 바로 잠이다.


한 번 잠들면 아무리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고, 최소 여덟 시간은 채워야 한다. 의대생에게 잠이 어디 있고, 레지던트에게 밤이 어디 있겠는가.


밤새 당직을 서고 새벽에 수술을 하는 생활을 남편이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 수술은 누구보다 섬세하게 했을 것이다. 다만, 수술 전에 깨우는 일이 가장 큰 수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 시어머니는 나에게 미리 경고까지 하셨다.

"얘는 깊게 잠들면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난다."


그러면서 어느 주말, 남편이 아침 8시에 깨워 달라고 한 날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머니는 8시부터 포기하지 않고 깨우기 시작했다. 결과? 남편은 8시에 일어나긴 했다.


밤 8시에.


딱히 그날 아침 8시에 꼭 일어나야 할 일은 없었고, 결국 그건 남편의 바람이었다. 결국 그가 실컷 자고 나서야 일어난 것이다.


그 사건 덕분에 우리 집에는 질문이 하나 생겼다. 남편이 몇 시에 깨워 달라고 하면, 나는 먼저 묻는다.

"그거… 희망사항이야? 아니면 진짜 일어나야 하는 거야?"


남편은 결국 PD가 되었다.

촬영 중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자야 하는 순간도 많지만, 바쁜 시간이 끝나면 언제든 자도 된다. 졸리면 잠깐 눈을 붙여도 되고, 프로그램에 차질만 없으면 된다. 잠과 싸우는 직업이 아니라, 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다.


결국 사람마다 하나씩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격이고, 누군가에게는 체력이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다. 그 적을 완전히 없애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적과 싸우는 대신, 자기 길을 찾는다.


우리 남편의 적은 잠이었다.

그래서 그는 잠을 이겨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과 잘 지내는 길을 선택했다.


가끔 생선을 해부하듯 가시를 발라내는 남편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외과의사가 될 뻔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적을 알고, 자기 길을 찾은 사람이라고.


밖으로 나온 생선, 곧 다시 물속으로. 적을 마주해도 자기 길을 찾는 손길처럼.


밖으로 나온 생선도 결국 다시 물탱크로 돌아간다.
인생도, 생선도, 결국 길을 찾는 법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적을 피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자기 길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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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청어구이가 먹고 싶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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