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대신 장바구니

우리는 늘 "여분"을 산다

by Susie 방글이




요즘 나는 불안 심리 (FOMO- Fear of Missing Out)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 웃기면서도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래는 SNS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피드 속 감정이라기보다 마트, 뉴스, 그리고 생활용품 진열대에서 더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요즘의 FOMO는 좋아요보다 장바구니에 더 가까운 감정처럼 느껴진다.


최근 한국에서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잠깐 화제가 됐다. 시작은 꽤 현실적인 이유였다. 중동 전쟁으로 나프타 공급이 흔들리고 일부 지자체의 가격 인상 이야기가 겹치면서 사람들 사이에 빠른 결론이 생겼다. 지금 사야 하나.


정부는 설명했다. 재고는 3개월치 정도 충분하고 당장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최악의 경우 일반 봉투 사용도 가능하다고도 했다. 말만 보면 급하게 움직일 이유는 없다.


그런데 사람의 반응은 설명보다 항상 조금 더 빨랐다.


마트의 풍경은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봉투를 집는 손이 조금 더 빨라지고, 카트를 밀다 말고 진열대를 한 번 더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쳤을 물건인데 어느 순간부터 '여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시작한다. 작은 안전장치처럼, 혹은 집 안 어딘가에 숨겨두고 싶은 감정처럼.


이 장면을 보면서 2020년 코로나 때 미국 마트가 떠올랐다. 팬데믹 초기에 화장지가 사라졌던 순간이다. 실제로 공급이 완전히 끊긴 상황이라기보다 부족해질 것이라는 감각이 먼저 퍼진 결과였다. 사람들은 현실보다 가능성에 더 빨리 반응한다.


나도 그때 마트에서 텅 빈 선반 앞에 잠시 멈춰 선 적이 있다. 화장지가 없다는 사실보다 더 낯설었던 것은 너무 익숙해서 존재를 의식하지 않던 물건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 순간 일상이 아주 조용히 재정렬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부족함'이라기보다 '익숙함의 삭제'에 가까웠다. 마치 세상이 어느 날 조용히 생활 기본값을 다시 설치하는 중인 것 같았다. 아무 설명 없이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우리가 당연하게 쓰던 것들이 목록에서 잠시 빠져 있는 상태처럼 느껴졌다.


화장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부족할 것 같은 감각이 먼저 채워지고 있었다.


불안은 줄을 세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보면 이상하게 남는 장면이 있다. 그 많은 준비 속에서 유독 조용히 지나갔던 것.


먹을 것에 대한 과한 사재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생존보다 먼저, 생활이 멈추는 지점을 채우고 있었다. 장바구니에는 쌀보다 화장지가, 통조림보다 쓰레기봉투가 먼저 담겼다.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생존의 계산이라기보다 살아가던 방식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감각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먹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이 어떻게 이어지지?"라는 질문이 먼저 올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이 반응이 특정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표현은 달라도 불안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불안은 언제나 가장 익숙한 것부터 건드린다.


그제야 조금 늦게 이해하게 된 것이 있다. 우리가 정말 먼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생활의 흐름이었다는 사실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보다 더 먼저 두려웠던 것은 씻고, 버리고, 다시 이어지는 그 반복이 끊기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위기 앞에서도 생존보다 생활을 먼저 계산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크게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일수록 손이 먼저 향하는 것은 늘 가장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이니까.


화장지, 쓰레기봉투, 그리고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상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은 꽤 합리적인 설명에서 시작된다. 전쟁이 있고 원자재가 있고 가격 변동과 정책 변화가 있다. 설명만 놓고 보면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설명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다.


뉴스는 정보를 전달하지만 사람은 그 정보를 미래의 감정으로 바꿔 받아들인다. 지금은 괜찮다는 말보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더 오래 남는다. 인간의 뇌는 가끔 경제 뉴스보다 먼저 재고를 계산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부족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부족해질 것 같은 세계 속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아닐까.


지금 안 사면 손해 볼 것 같은 느낌,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감각. 그 감정은 어느새 일상의 언어가 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이 구조가 어느 나라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쓰레기봉투가 되고 미국에서는 화장지가 된다. 물건은 계속 바뀌지만 사람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장면을 다른 세트장에서 반복해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덜 찼는데, 왜 벌써 무거운 느낌이 들까.


결국 FOMO는 거창한 심리 이론이라기보다 아주 일상적인 반응에 가깝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지금 아니면 늦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단 하나 더"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장바구니는 늘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는 작은 불안들이 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남는 생각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는 부족한 세계에 사는 걸까, 아니면 부족해질 것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세계에 사는 걸까.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속도로 계산하고 비슷한 속도로 카트를 밀고 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조금 더 안심하기 위해서.

사진 출처: India Today — 한 중국 배우가 시상식에서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장면이 최근 화제가 됐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결국은 일상이었다.


#쓰레기봉투#전쟁#FOMO#미국#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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