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 철길 옆의 작곡가
체코의 작은 마을은 생각보다 고요하다. 낮게 이어진 지붕들과 오래된 길, 그리고 천천히 흐르는 공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곳이다.
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이 이어지다가, 멀리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다가온다. 소리는 아직 또렷하지 않지만, 공기가 먼저 흔들린다.
그리고 이내, 철로 위를 지나가는 기차 한 대.
덜컹, 덜컹, 덜컹.
체코의 대표적인 작곡가, 안톤 드보르자크 (Antonín Dvořák)가 살던 집 앞에는 철길이 있었다고 한다. 화면은 낮게 깔린 철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잠시 뒤 기차 한 대가 그 위를 가로지른다. 바퀴가 레일을 타고 지나가는 소리가 화면을 채운다. 그 집은 그 소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움직이는 것들에 유난히 끌렸다고 한다. 반복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소리, 일정한 간격 속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리듬. 그의 삶 가까이에는 언제나 철도의 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본다'. 정확히는, 보면서 함께 듣는다.
기차의 소리는 생각보다 음악에 가깝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결이 달라지고, 다가왔다가 멀어지며 공간의 밀도를 바꾼다. 그 안에는 일정한 박동이 있고, 그 위로 아주 작은 차이들이 계속해서 겹쳐진다.
남편은 그 리듬을 기록했을 것이다.
나는 그 리듬을, 화면 밖에서 다시 듣는다.
카메라는 장면을 붙잡지만, 소리는 그 틈을 흘러나온다. 화면에 담기지 않은 공기와 거리,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까지 함께 움직인다.
그 집에서 그는 얼마나 오래 그 소리를 들었을까.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던 감각은 어느 순간 풍경이 아니라 리듬으로 자리 잡고, 결국 음악으로 이어진다.
나는 문득, 내가 살아온 소리들을 떠올린다.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으면 바쁘게 흘러가던 도시의 한복판이 먼저 떠오른다. 소리보다 장면이 먼저 밀려온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던 택시와 서둘러 움직이던 발걸음들.
커피가 추출되는 소리를 들으면,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아침의 공기가 함께 떠오른다.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 천천히 채워지던 시간의 속도.
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장면을 다시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그 성격은 조금 다르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의미보다 먼저 리듬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억양과 속도, 끊어지는 방식만으로 이미 하나의 장면이 된다.
우리는 말의 뜻보다, 말이 지나가던 방식을 더 오래 기억한다.
소리는 사진처럼 남지 않는다. 대신 몸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전혀 다른 순간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음악은 완전히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흘려보낸 소리들을 다시 배열하는 일에 가깝다.
드보르자크의 음악이 그렇다.
멀리서부터 조용히 다가오는 '신세계로부터’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교향곡 제9번' (Symphony No. 9 'From the New World' )의 첫 선율처럼, 혹은 가볍게 반복되며 스며드는 '유모레스크' (Humoresque)의 리듬처럼, 그의 음악은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도착한다.
철길 위를 지나가던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도시의 숨결, 그리고 그가 머물렀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형태를 바꾸어, 결국 선율로 남는다.
한 사람의 일상은 그렇게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은 다시 우리에게 건너와 감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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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잠시 더 머물렀다. 소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리듬은 아직 몸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Your voice is music to my ears.'(당신의 목소리는 내게 음악처럼 들린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문장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소리가 감정으로 남는 방식에 더 가까운 문장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결국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서로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어떤 소리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소리는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소리는 결국 이렇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