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하나 고르다 인생 생각함

미국 버터 코너에서 시작된 선택의 감각

by Susie 방글이




빵순이인 나는, 사실 빵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그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보통 빵을 한 입 먹고 난 뒤에 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먹을 거면 맛있게 먹고 싶다는 것이다. 특히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르는 순간은 거의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버터를 사러 마트에 갔다.


버터를 사러 갔다가, 생각보다 오래 서 있었다. 고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고를 기준이 선명하지 않아서였다.


유기농, 발효, 기버터. 익숙한 이름과 처음 보는 이름 사이에서 시선이 몇 번을 오갔다.


그중 한쪽 끝에서 문장 하나가 눈에 띄었다.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 ("이게 버터가 아니라니, 말도 안 돼.")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 버터는 아니지만, 버터처럼 충분히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굳이 설명하듯 말하는 문장이었다.


버터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버터라고 믿게 만드는 이름. 그 앞에서 잠깐 웃음이 났다. 선택지는 늘어난 것 같지만, 이상하게 더 쉽게 고를 수는 없었다.


미국의 마트는 늘 이랬다. 버터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기준이 필요했다. 무염인지, 발효인지, 어떤 우유로 만들었는지. 같은 버터인데도 사람마다 집어 드는 것이 달랐다. 각자의 취향이 너무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자리였다.


반면 한국에서의 버터는 한동안 단순했다. 버터면 버터였고, 아니면 마가린이었다.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집어 오던 물건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버터 하나에 이렇게 오래 서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요즘 미국에서 버터 코너 앞에 서면, 나는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감각을 먼저 느낀다. 많아진 것은 선택의 폭인데, 이상하게 작아지는 것은 내 기준 같았다.


버터는 그저 하나의 재료가 아니라, 이미 여러 갈래로 나뉜 선택처럼 보였다.


아주 비싸고 이야기를 함께 파는 버터가 있다. 요즘은 프랑스나 유럽의 버터들도 마트에서 쉽게 보인다. 어떤 것들은 흔히 "에르메스 버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몇 년 전, 직장 동료에게 그런 버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리본까지 달린 포장을 받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버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작은 명품 상자 같아서 잠깐 기대까지 했다.


막상 열어보니 버터였다. 카드에는 '버터계의 에르메스'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이제는 버터도 이렇게 선물하는구나' 싶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이름만으로 이미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들.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누군가는 기꺼이 그 이야기에 값을 지불한다.


버터는 아니지만 버터를 대신하는 것들도 있다. 빠르고 편하지만 어딘가 다른 결을 가진 것.


그리고 버터는 아니지만 버터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이름과 설명으로 충분히 그럴듯해 보이게 만든 것들.


그 사이에 말없이 놓여 있는 버터가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자주 선택되는 것.


한국도 이제는 이 풍경에 가까워지고 있다. 수입 제품이 늘어나고, 취향이라는 기준이 생기면서 버터 하나에도 설명이 붙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하지 않아도 되던 고민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무엇을 살지 보다, 어느 쪽을 고를지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버터 하나로 이렇게 많은 칸을 채워도 되는 걸까.


버터를 고르려다, 버터의 세계를 보게 됐다. 버터에도 이야기가 붙기 시작했다.


버터인데, 왠지 격식이 느껴진다. 영국 버터라 그런지, 여왕까지 함께 따라온 느낌이다.


결국 나는 그 중간의 버터를 집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 너무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체되지도 않는 자리.


카트에 넣으면서 잠깐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장 비싸지도 않고, 가장 빠르지도 않은 것.


대신 오래 기억되지 않아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괜찮은 것.


냉장된 버터는 여전히 단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부드럽게 펴질 것이다.


아마 우리가 선택하는 자리도 비슷할지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시간을 지나며 자연스러워지는 것. 몇 번 고르다 보면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날의 선택은 버터 하나 고른 일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그런 별것 아닌 선택들을 자주 삶이라고 부르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버터 고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단순한 게 가장 맛있다.


결국 나는 오늘도 그런 선택들로 하루를 채운다.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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