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찔끔
한국에 올 때마다 놀란다. 병원 예약, 사진 촬영, 심지어 공사까지—모든 게 번개처럼 뚝딱 끝난다.
반면 미국은 뭐든 느릿하다. 예약 하나 잡으려면 달력 퀴즈라도 푸는 기분이다.
두 나라를 오가며 살아보니, 한국의 '빨리빨리'와 미국의 '천천히'는 단순한 속도 차이가 아니었다.
삶의 방식 자체가 달랐다.
작년엔 남편이 한국에서 임플란트를 했다.
미국이라면 예약, 진료, 재예약, 수술 날짜까지 잡는 데만 몇 주는 기본이고, 비용도 하나에 700만~8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한국에선 100만 원 정도면 가능하단다.
얼마 전, 남편의 임플란트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전화했더니 역시나 “바로 오세요.”
당일 치료까지 완료.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이러다 이빨도 택배로 받겠네!"
그 기세에 나도 병원에 들렀다.
그저 예약만 잡으려 했는데, 접수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상담 가능하세요!"
나는 당황해 "아… 다음에 올게요…"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그 환한 미소 뒤에 혹시 업무 압박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한국의 빠름은 환자 입장에선 효율적이지만, 때론 세심함이나 여유가 희생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미국 병원이 이상적인 것도 아니다.
예약하고 기다리다 보면 병이 저절로 나을 것 같다.
'자연치유'를 강제로 체험하는 느낌이랄까.
이 속도 차이는 병원만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미국에서 집을 사는 데만 넉 달이 걸렸다.
계약 후에도 서류 확인, 대출 심사, 감정 평가, 수리 협상까지, 행정의 미로를 거쳐야 했다.
이사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같았으면 기사님이 당일 와서 뚝딱 고쳤을 텐데, 미국에선
온라인 접수 → 기술자와 통화 → 예약 잡기 → 며칠 뒤 수리.
거기다 부품이 없으면 또 기다려야 한다.
내 인내심도, 체력도 바닥났다.
일상 속에서도 속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증명사진이 필요해 사진관에 들렀더니, 직원이 말했다.
"5분이면 됩니다!"
보정부터 출력까지 순식간이었다.
커피 한 잔 사러 간 사이, 사진이 먼저 나와 당황스러웠다.
미국 같았으면 촬영하고, 몇 시간 후에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공사한다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돼 새 건물이 쓱 올라오고, 도로도 하룻밤 사이 깔끔해진다.
그 속도는 감탄스럽지만, 가끔 도로가 꺼지거나 새 건물 벽에 금이 가기도 한다.
'조금만 더 꼼꼼히 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국은 어떤가? 도로 하나 고치는 데 몇 년.
새 건물 짓는다고 펜스를 치고도 첫 삽 뜨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우리 집 앞 슈퍼마켓은 'Coming soon, Thanksgiving!'이라는 포스터를 붙였지만,
문을 연 건 다음 해 Thanksgiving 즈음이었다.
포스터는 빛바랬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공사장보다 먼저 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느림은, 때때로 안전을 보장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나는 두 세계의 속도에 적응하려 애썼다. 한국의 빠름은 때로 나를 당황하게 하지만, 그 안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앱 하나로 예약하고, 밤새 공사를 끝내는 효율성은 시간을 선물해 준다.
미국의 느림은 답답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오는 안정감도 분명 존재한다.
서류 하나, 진단 하나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철저함은 결국 신뢰로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한국의 속도 앞에선 우물쭈물하는 '미국형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 빠름 속에서, 잃어버렸던 시간과 '효율'이라는 슈퍼파워를 되찾은 기분이다.
여러분이라면, 빠름과 느림 중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