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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스테이크가 만난다면...

치즈 스테이크?

by Susie 방글이

한국에 오기 전, 우리는 매번 말했다.
“이번엔 한국 가면 그동안 못 먹었던 한국 음식, 진짜 실컷 먹자!"


그리고 말한 대로, 한 달 넘게 김치찌개, 불고기, 전, 비빔밥, 순대, 떡볶이, 튀김, 회, 닭갈비, 막국수, 냉면, 등등.

우린 한국 음식으로만 꽉 채웠다. 먹고 싶던 게 너무 많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이것도 먹어야지, 저것도 먹어야지' 하며 달렸다.


그런데 여행 중 하루,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나… 갑자기 치즈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

그렇다. 사람은 한 가지 음식만 먹고는 못 산다. 아무리 그리웠던 것도 매일 먹다 보면 결국 낯선 것, 익숙한 것, 새롭고 느끼한 먹거리가 어쩐지 그리워진다.




금요일 저녁, 바쁜 치즈스테이크 집.


철판 위에선 고기가 쉴 새 없이 익어가고, 치즈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가게 안은 기름 냄새와 고소한 치즈 향으로 가득했고, 주방 뒤편에선 양파와 피망을 볶는 소리가 지글지글 이어졌다.


철판 앞에는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퇴근하고 온 회사원, 야구 모자를 쓴 대학생, 가족 단위 손님들까지. 누군가는 "치즈는 아메리칸으로!", 누군가는 "나는 스위스 치즈!"라며 취향을 외쳤다.


남편은 철판볶음 주걱으로 고기를 쓱쓱 볶으며 주문을 외웠다.
“아메리칸 치즈 위드아웃 하나. 스위스 위드 두 개!"


여기서 '위드(With)'는 양파 포함, '위드아웃(Without)'은 양파 빼달라는 뜻.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 가게만의 암호 같은 주문법이었다.


철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며 내는 소리와 치즈가 흘러내리는 장면, 거기에 빵이 살짝 구워지는 냄새까지 섞이면, 그 좁은 가게는 늘 작은 전쟁터 같았다.


남편은 유학 시절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게 안은 늘 고기 굽는 냄새와 치즈가 녹아내리는 냄새로 가득했고, 철판 앞엔 끊임없이 손님들이 줄을 섰다.


하루에 몇십 개씩 만들다 보니, 고기 색깔만 봐도 익음 정도를 알아챘고, 치즈가 얼마나 녹아야 빵에 올렸을 때 딱 좋을지도 감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치즈스테이크만 보면 남편은 슬쩍 전문가인 척하며 "이 집은 좀 별로네" 라며 으스대곤 한다.


그런 남편과 나는 미국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우연히 '찰리 치즈스테이크(Charleys Cheesesteaks)'라는 간판을 처음 봤다. 사실 치즈스테이크 가게는 어디서나 흔하니까, 별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한 입 베어 문 순간 둘 다 동시에 눈이 커졌다.

미국 쇼핑 몰 푸드코트 안에 있는 찰리스 치즈스테이크

"어? 이거 다른 치즈스테이크보다 훨씬 담백하고 맛있네!"
나는 감탄했고, 남편도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남편은 유난히 치즈스테이크에 대한 평이 까다로웠다. 왜만한 건 '음… 이건 별로야'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찰리에서는 달랐다. 한 입 먹고는 곧장 인정.


"이거, 맛있는데!"


우리는 농담 삼아 "이거 한국 사람이 만든 거 아냐?"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정말로 한인 이민자 찰리 신(신무철)이 창업한 브랜드였다. 알고 나니 괜히 더 정이 가는 느낌이었다.


찰리 치즈스테이크는 1986년 대학생이었던 신무철 씨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근처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그는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에 반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작은 매장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 수백 개 매장이 있을 만큼 성장했다.


참고로, 원조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는 1930년대 팻 올리비에리가 얇게 썬 쇠고기를 빵에 넣어 팔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특히 필라델피아에 가면 Pat’s King of Steaks라는 원조집이 있는데, 고기 맛도 진하고 치즈도 듬뿍 올려줘서 인기가 많다.

다만, 우리 입맛엔 간이 세고 기름기가 많아 다 먹고 나면 속이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도 있다.

필라델피아 대표 음식- Philly Cheesesteak

그에 비해 찰리 치즈스테이크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담백하고 깔끔한 맛으로 차별화를 했다.

소금 간도 적당하고, 고기와 치즈, 양파, 빵의 균형이 잘 맞는다.

특히 빵이 쫀득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아 속 재료와 잘 어우러진다.

기름기도 과하지 않아 다 먹고 나면 입안이 개운하다.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먹은 치즈스테이크 중 한국인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이건 좀 다르다"라고 말하며 오랜만에 만족스러워 했으니까.

그날 이후로 찰리 치즈스테이크는 우리 부부의 치즈스테이크 기준점이 됐다. 그거 먹으러 일부러 쇼핑몰에 가기도 한다.


찰리 치즈스테이크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평택의 미군부대 안에도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출입이 어렵다지만, 한국인의 사랑이 묻어 있는 브랜드라는 게 괜히 반갑다.

치즈스테이크 하나에 이민자의 도전과 고국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게, 먹는 사람 입장에서도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남편이 치즈스테이크를 먹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치즈든 고기든 소스든, 과하면 물리는 법이야. 적당히 담백하게, 적당히 고소하게, 적당히 기름지게, 그게 제일 맛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었거든."


찰리 치즈스테이크가 딱 그렇다.

당연히 치즈 스테이크는 결국 못 먹었다. 대신 우리는 그날 저녁 막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미국 가면 이 맛도 또 생각나겠지 하고 웃었다. 사람 입맛이란, 참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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