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실수가 아니야
식당 한쪽에서 매콤한 냄새가 솔솔 풍긴다. 팬 위에서 닭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사람들은 한 입 베어 물며 "어머, 이거 맛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들 중에는, 사실 처음부터 계획된 게 아닌 경우도 많다. 실수나 우연으로 태어난 음식들.
예를 들어,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한 레스토랑. 요리사가 라비올리를 튀김 기름에 실수로 떨어뜨렸다. 순간 당황했겠지만, 이 바삭바삭한 라비올리가 오히려 새로운 인기 메뉴가 됐다. 지금은 ‘토스트드 라비올리(Toasted Ravioli)’라는 이름으로 세인트루이스 대표 음식이다.
우리 가족도 몇 년 전 세인트루이스에 갔다가 이 프라이드된 라비올리를 처음 먹어봤다. 현지 맛집이라고 소문난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겉은 바삭하게 튀겨지고 그 위에는 파마산 치즈 가루와 허브가 솔솔 뿌려져 나왔다. 안에는 고기와 치즈, 향신료로 채워진 만두 같은 속이 들어 있었고, 뜨끈할 때 토마토소스에 푹 찍어 먹는다.
원래 라비올리는 부드러운 파스타 반죽 안에 속재료를 넣고 물에 삶아 소스에 버무려 먹는 요리인데, 이건 기름에 튀겨서 바삭한 식감과 고소함이 더해진 게 가장 큰 차이점. 겉모습은 군만두 같았지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고소한 치즈와 속 재료의 조화에 우리 셋 다 눈이 커졌다.
"이거 뭐야? 맛있는데!"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켰다가, 결국 접시를 싹 비우고 나왔다. 그리고 이게 실수로 탄생한 메뉴라는 걸 알고 나니 괜히 더 재미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렇게 미국에는 '우연의 산물'인 음식 이야기가 꽤 많다. 감자칩, 아이스크림 콘, 치토스 등등.
감자칩은 손님이 감자튀김이 너무 두껍다고 투덜대자 요리사가 홧김에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튀긴 게 시작이고, 아이스크림 콘은 1904년 박람회에서 그릇이 떨어지자 옆에서 팔던 와플을 말아 아이스크림을 담은 게 계기다. 치토스는 2차 세계대전 뒤 남은 치즈가루 아까워서 뻥튀기랑 섞어본 게 시초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쫄면.
이 쫄깃하고 매콤 새콤한 비빔면도 사실 우연히 탄생한 음식이다. 1970년대 인천의 한 공장에서 냉면 면발을 뽑다가 실수로 면발이 두껍고 쫄깃하게 뽑힌 게 계기였다. 버리긴 아까워 그냥 매콤한 양념장에 비벼서 직원들끼리 먹어봤더니 어라? 이거 제법 맛있네?
그 뒤로 동네 분식집으로 퍼지면서 학교 앞, 시장 통닭집마다 쫄면이 등장했고, 원래 냉면보다 두껍고 탄력이 강해 '쫄깃한 면'이라 해서 쫄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쫄깃한 면발에 매콤한 양념, 오이채, 삶은 달걀, 김가루 올려 비벼 먹는 맛. 가끔 입맛 없을 때 분식집에서 시켜 먹던 그 기억도 덩달아 따라온다.
신당동 떡볶이도 있다. 1950년대 서울 신당동의 한 분식집에서 우연히 춘장을 떨궈 떡과 어묵을 볶아본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이걸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의외로 고소하고 감칠맛이 좋아서 손님들에게 슬쩍 내놨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 뒤로 고추장 버전으로도 응용해 만들면서 점점 인기를 끌었고, 급기야 신당동 일대가 떡볶이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됐다. 나도 가끔 떡볶이를 만들 때 춘장을 조금 넣기도 한다.
1960년대, 돼지고기가 부족하던 시절, 한 식당 주인이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로 갈비 양념을 해 볶아봤는데, 의외로 맛이 좋아 손님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춘천 하면 닭갈비가 됐고,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닭갈비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매콤 달콤한 양념에 채소와 떡, 국수사리까지 넣어 함께 볶아 먹는 닭갈비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좋
아하는 한국의 대표 인기 음식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미국에서는 닭갈비를 파는 곳이 거의 없다. 한국 식당에서도 메뉴에 있는 곳을 찾기 어렵다 보니, 결국 내가 직접 집에서 해 먹게 됐다. 코스트코에서 닭다리살을 사다가 양념을 만들고, 양배추와 떡, 고구마를 넣고 지글지글 볶아 먹다 보면 한국의 그 맛이 그리울 때마다 제법 위로가 된다.
깻잎 구하기가 어려울때가 있어 아예 집 텃밭에 깻잎을 심어 키웠는데, 이게 또 향이 끝내줘서 지인들이 와서 먹어보고는 "이거 진짜 맛있다!"며 오더를 넣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번 주 닭갈비 언제 하냐"는 예약 문자가 줄을 섰다. 덕분에 우리 집은 ‘야매 닭갈비 전문점’으로 등극했다.
이렇게 보면 우연과 실수의 역사가 참 맛있다.
실수가 없었더라면 없었을 음식들이, 오히려 실수 덕분에 국민 음식이 됐으니.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지만, 가끔은 엉뚱한 우연이 내 인생의 맛을 바꿔놓기도 하니까.
그러니, 오늘 뭔가 어설픈 실수를 했다면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그게 어쩌면 당신만의 '프라이드된 라비올리', '쫄면', 아니면 신당동 떡볶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근데 왜 '갈비'지?
닭뼈는 하나도 안 들어가는데.
나만의 요리를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