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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국수 옆, 바게트 위의 김치

국경은 사랑만 넘는 게 아닙니다

by Susie 방글이





음식은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이다. 한 입에 그 나라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 시간이 켜켜이 담겨 있다. 한국의 김치가 그렇다. 김치는 세대를 이어온 음식으로,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드는 따뜻한 풍경 속에 늘 함께였다. 배추를 절이고, 고춧가루와 양념을 버무려 장독대에서 발효시키던 시간들. 요즘은 마트에서 쉽게 사 먹지만, 김치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깊게 배어 있다.


이제 김치는 한국만의 음식이 아니다. 미국의 테이블 위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김치는 더 이상 ‘한국 식당’ 전용이 아니다. 햄버거, 타코, 피자 위에도 올라간다. 처음엔 '저걸 왜 거기 올리지?' 싶다가도, 한 입 먹으면 새콤 매콤한 맛이 느끼한 미국 음식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이러한 김치의 변화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 딸과 친구는 이를 가까이에서 증명하고 있다. 미국 중동부의 작은 파머스 마켓에서 매주 토요일 김치를 판다. 직장을 다니며 바쁜 와중에, 김치 사랑으로 시작한 취미 사업이다. 김치를 직접 담고 팔기 위해 푸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매주 중 하루 퇴근 후 지정된 키친에서 토요일 장터를 위해 김치를 만든다. 억지로 할 일이 아닌, 순수한 열정으로 하는 일이다.


딸과 친구는 매주 전통 김치(Traditional Kimchi), 달콤한 배 김치 (Pear Kimchi), 미국식 딜 김치 (Dill Kimchi)를 정성스레 준비한다. 딜 김치는 현지 입맛을 겨냥한 실험작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다음엔 맛에 반해 다시 찾아온다.

이 작은 한 병 가격을 알면... 다들 놀랄 거다 ㅎㅎ
주말에 열리는 파머스 마켓 김치를 사러 온 사람들
딸과 딸의 친구

딸은 김치를 단순한 반찬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타코, 버거, 샌드위치에 곁들여보라고 웹사이트에 제안한다. '김치가 이렇게 어울릴 줄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김치는 점점 미국인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그 과정을 보며 김치의 다재다능한 매력에 새삼 놀란다.

바게트 위에 올려진 딜김치
크래커나 칩을 찍어먹는 딜 김치 Dipping 소스와 김치 펜케이크
매진! 시식은 가능! 다음 주 토요일에 봐요.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도 흥미롭다. 동네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김치가 사이드로 나왔다. 처음엔 '쌀국수에 김치라니?' 싶었지만, 국물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울려 또 달라고 했다나. 한국이라면 “김치 더 주세요” 하면 공짜인데, 거긴 추가 4달러. 친구가 영수증 보고 '역시 미국이야'라며 웃었다. 그래도 김치가 '돈 내고 먹는'가치 있는 음식이 됐다는 게 뿌듯하다.


음식이란 그렇다. 나라마다 입맛에 맞게 변하고, 새롭게 해석된다. 익숙한 음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낯설고 반가운 기분. 한국 밥상에서 김치, 타코 위 김치, 쌀국수 옆 김치도 결국 같은 김치다. 다른 건 먹는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일 뿐.


김치는 이제 한국의 반찬을 넘어 세계인의 테이블에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인으로서 조용한 자부심을 느낀다.


다음은 어떤 맛과 이야기를 만날까?

사막에서 만난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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