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과 세일즈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를 보며 한참 낄낄거렸다. 바로 추석특집! 하석진과 김광규 편이었는데, 제작진의 의도된 기획 때문인지, 그 둘은 데칼코마니 같은 비슷한 삶을 살면서도 또 그 느낌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재밌는 건 둘 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용하는데 멍충이 같은 스피커가 말을 잘 못 알아먹는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는 검이다. 많은 이들의 의심과는 달리 해당 장면은 PPL이 아니었고 방송사의 자발적 노출이란 사실! 결국 그렇게 노출한 후 PPL역제안이 들어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는 장면을 노출하는 게 브랜드에 좋은 건가 나쁜 건가? ㅎㅎ
* 나 혼자 산다 추석특집 편 - 뜻밖의 AI 스피커 등장
어쨌든 요즘 인공지능 스피커는 김광규 아재도 쓸 정도로 상당히 일상화됐지만, 론칭 초반만 하더라도 대중의 관심은 냉냉 하나 못해 아주 겨울왕국이었다. 당시에 나도 AI 스피커 광고 PM을 몇 번이나 해 봐서 그 씁쓸한 반응 잘 안다(ㅜㅜ). 아무튼 그 시기는 그저 그런 AI 스피커 광고를 이어가던 때였는데, 좀 놀라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진짜로 눈이 번쩍 떠질 만큼 충격적인 광고를 본 것인데, 그건 바로바로 혜성처럼 나타난 '애플 홈팟' 광고였다. 그 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기에, 아마도 독자분들께서도 한 번 정도는 봤을 법한 영상이다. 각설하고 일단 다시 한번 그 감동을 느껴보자.
* 애플 홈팟 광고 ('18년 3월에 온에어) - 그 해 '칸 국제 광고제'에서 그랑프리 상을 수상한다. 캬~
https://www.youtube.com/watch?v=70P7-pkyP4Q
기능 설명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회사 광고나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경쟁사 광고와 비교해 볼 때 이 광고는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다. 우리는 이제 막 수레에 짐 싣고 온 힘을 다해 언덕을 끌고 가는데 바로 옆 도로에선 람보르기니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는걸 쌩눈으로 직관한 느낌이랄까. 놀랍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해서 지금 내가 하는 일,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 ‘그녀(Her)’에서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 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가 광고 연출을 맡았고, 주목받는 뮤지션이자 댄서인 'FKA 트위그스(Twigs)’가 등장해 끝내주는 안무를 펼쳤다. 보고 있으면 막 빠져 들어 어깨춤이 들썩들썩 거린달까. 어쨌든 광고에 등장한 색감과 미장센, 시각적 표현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교과서 삽화로 넣어도 될 정도로 후덜덜했다. 게다가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뭐랄까. 향정신성 약물을 한 바가지 들이켜 하이 된 상태를 영상으로 표현하면 딱 이렇게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걸 CG 없이 그냥 쌩으로 세트를 지어 표현했다고 한다. 대체 아침마다 뭘 먹으면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크리에이티브 뿐만아니라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실행력에 절로 박수가 쳐진다.
* 애플 홈팟 광고 - 제작 과정 / CG를 쓰지 않고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시나요 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go6Hpal8fUA
당시 하필 나도 AI 스피커 광고 한편을 막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는데, 쪽팔려서 어디론가 잠시 도망갔다가 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즈음 우리는 철저히 ‘기능’에 포커스를 하고 ‘소비자 베네핏’을 직접 보여주는 시리즈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신기한 기능이 있어요! 일단 한번 써보고 싶지 않나요?”의 방식으로 고객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게다가 신사임당의 나라답게 육아 콘텐츠 반응이 상당히 좋을 때라, 교육 콘텐츠를 확보해서 공격적으로 세일즈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다. 애플 홈팟 광고와 같은 시기에 온에어 된 광고는 “진우는 영어 시작했어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 KT 기가지니 광고 ('18년 4월 온에어) - 철저히 교육 ‘기능’에 포커스를 맞춤 (비교되는 게 참 부끄럽네). 당시 다큐멘터리형 극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CMO의 요청이 있어, 화면이 참 터프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Z4fSEdpsUI
당시 타사 광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최대 결전지는 바로 육아맘이었다. 국내 시장의 큰 손, 맘들을 대상으로 얼마나 효과적이고 재미있는 영어교육이 가능한지 보여주기 위해 국내 경쟁사들은 사활을 걸며 경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육아맘 뺏기 고지전을 하고 있었던 거다. 영유아들을 위한 교육 시장 박람회가 매년 크게 열릴 정도라는 시장 파워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달까. 어쨌든 당시 KT 광고와 대동소이했던 인공지능 스피커의 교육 콘텐츠 광고들을 살펴보자.
* 비슷한 시기, LGU+의 '우리집 AI 스피커'편 ('17년 12월 온에어)
https://www.youtube.com/watch?v=shhx8C7OJOI
그나마 구글은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하긴 한다. 요가를 받으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간단히 말 한마디로 여러 가지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엔 ‘기능’을 보여준다는 광고의 목적성은 국내 여러 경쟁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이렇게 유용한 ‘기능’에 소비자들이 반응하고 지갑을 열 수 있다는 믿음 때문 일 테다.
* 구글 어시스턴트 광고 - 역시 '기능'에 포커스를 맞춘다
https://www.youtube.com/watch?v=49vROJlqq-E&list=RDCMUCdc_SRhKUlH3grljQXA0skw&start_radio=1&t=3
그럼 애플과 여타 광고들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간극은 대체 왜 발생할까. 당연히 제작비 때문? 그래. 현실적으로 기본적인 퀄리티는 제작비에 기인한다. 인정! 그런데 그거 말고. 왜 애플은 그렇게 '힙한 갬성을 전달'하고 국내 경쟁사들은 꾸역꾸역 '기능을 소개'하냔 말이다.
이건 바로 광고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쉽게 말해 한 사람은 광고를 통해 '브랜딩'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다른 사람은 광고를 통해 '세일즈'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두 광고의 차이는 광고의 목적성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다시 애플의 홈팟으로 가보자. 홈팟에는 다양한 기능적 우위와 차별화 포인트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스피커 성능이 끝내주게 좋다거나 ‘시리’의 목소리가 유난히 낭랑하다거나 다양한 애플 디바이스와의 연결성이 진짜 진짜 쉽다거나 하다 못해 전력 효율성이 왕이라거나 뭐 이런 차별점 말이다.
그런데 애플은 굳이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광고를 보고 있다면 “그냥 느껴봐”라고 말을 거는 듯하다. 홈팟과 함께라면 만사 귀찮은 퇴근 후 일상도 뭔가 예술적 영삼이 떠오르며 그렇게 어깨춤이 으쓱으쓱 나오는 뭐 그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애플은 ‘브랜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능과 관계없이 존재 만으로도 빛날 수 있는 고객의 인지체계를 흔들려하는 것이다.
결국 브랜딩을 하고 싶다면 고객의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련됨? 예술적인? 신이남? 춤을 추고 싶은? 이런 감정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무지개색? 차가운 금속성?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네온 불빛? 뭐 이런 구체적인 심상을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 혹은 펑키한 20살 댄서나, 스마트한 35세 비즈니스맨, 세련된 커리어 우먼 같은 구체적인 인격체로 브랜드 이미지를 포지셔닝할 수 있다. 애플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던 것 같다. 광고를 통해 브랜딩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이미지로 브랜딩 하고 싶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광고를 보면 다 알 테니 말이다. 물론 국내 업체들도 AI스피커의 브랜딩 광고를 진행하기도 했다. 론칭 초기에 우리 상품을 어떤 포지션으로 가져가야 할지 보여주는 뭐 그런 광고였다. 파급효과는 좀 아쉬운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 KT 기가지니도 초기에는 '브랜딩' 목적으로 만든 광고들이 있다('17년 3월 온에어). 역시 홈팟에 비할바는 아니지만(--)(__)
https://www.youtube.com/watch?v=kCxUhyYIlpE
그렇다면 애플 홈팟과 비교되는 국내 인공지능 스피커 업체들의 광고를 보자. 우리 회사를 포함해 국내 경쟁사들은 '브랜딩' 보다는 확실히 '세일즈'에 집중하고 있다. 영어교육을 걱정하는 엄마의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우리 서비스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객이 평소에 문제를 느꼈거나 언멧 니즈가 있었던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든다. 반복적으로 노출하며 집요하게 자극한다. 이런 전략은 우리의 기능이 타사보다 우위에 있을 때, 혹은 브랜드 인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을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세일즈 광고가 실제로 먹혔냐고? 광고 한편으로 직접적인 매출액이 출렁이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 같다. 세일즈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광고에서 노출한 기능의 사용량은 분명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광규 씨가 노래방 기능을 사용한 후 기가지니의 노래방 기능 활성화 수가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제품의 기능을 써보게 마드는 것, 그리고 그런 기능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서비스 업체가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고객 공략법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게다가 국내 키즈 교육 시장의 큰손 맘들을 자극할 수 있다면야! 이렇듯 세일즈 광고는 브랜드 광고에 비해 좀 더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좀 더 즉각적인 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크나큰 장점이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건 오직 세일즈 광고만으로는 롱런하는 브랜드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세상 모든 상품들의 기능 차이가 크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럴 때 고객들은 세일즈 광고에 무심해진다. 또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차고 넘칠 때 고객들은 더더욱 무심해진다.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뭐"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브랜드 광고와 세일즈 광고는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혹은 경쟁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다. 좀 느리지만, 좀 더 근본적인 영향을 고려했을 때 역설적이게도 브랜딩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상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왜 우리 상품을 선택해야 할까. 감성? 느낌? 이미지? 가치? 라이프스타일? 뭐 이렇듯 추상적인 이미지가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가 고객으로부터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인다.
예컨대,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인 파타고니가아가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자. 우리는 파타고니아의 디자인이 남달리 쿨하다거나, 옷감이 좋다거나, 통풍이나 보온 기능이 끝내주기 때문에 그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힙한 '정서'에 주목한다. 대표의 긱한 고집스러움과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에 매료된다. 바로 그 가치와 정서에 공감하고 그게 바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속에 어떤 인지적 자산을 쌓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브랜드라면,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브랜드와 함께 라면 좀 더 흥미롭고 신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바로 이런 문제 들에 답을 줄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브랜드다. 그런 브랜드에게는 결국 유리한 판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기능을 소비하게 할 것인가, 가치에 공감하게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브랜드가 어떤 방향성으로 갈 것이냐를 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중요한 건 바로 목적을 정하는 것이다. 이 광고의 목적은 브랜딩인가 세일즈 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마케터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컨센서스 없이 시작한 광고는 장담컨대 폭망이다. 크리에이티브는 그다음이다. 완성도는 역시 그다음 고민거리이고 말이다.
광고를 통해 브랜딩이 하고 싶다면, 고객의 인지에 어떤 포지셔닝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우리들을 어떤 장치를 쓸 것인지 디테일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영화감독을 섭외할 것인지, 힙한 갬성 넘치는 댄서를 섭외할 것인지 백지에 그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반면 세일즈를 하고 싶다면, 상품의 베네핏, 언멧니즈 상황, 선망성 등의 방법으로 일단 해당 상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브랜딩 광고는 브랜드를 처음 론칭했을 때, 우리가 시장에서 1위 업체 일 때 유리하게 작용한다. 세일즈 광고는 우리가 독보적인 차별점이 있을 때, 시장에서 MS를 끌어올려야 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결국 브랭딩과 세일즈는 그 목적과 활용성에 맞게 사용하고 평가해야 한다.
참 많은 브랜드가 스스로 위치하고 싶어 하는 지점과 고객이 생각하는 지점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 사실 대부분 그러한 게 현실이다. 그걸 좁혀 가는 게 브랜딩이고 광고의 역할 아닐까. 새롭게 마케팅을 시작해야 한다면 광고 한 편 한 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브랜딩을 위해선 뭘 할 것인지 또 세일즈를 위해선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말이다. 글을 다 읽었다면 모니터를 덮고 한번 상상해 보면 어떨까. 지금 우리 광고는 어딜 향해 가고 있을까. 그 방향성은 어디일까 말이다. 애매한 방향성엔 애매만 고객 반응 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다음 편 계속 /
p.s. 오늘 소개할 광고는 상당히 웃프다. 음성인식을 잘 못하는 AI기기에 대한 풍자랄까ㅎㅎ
https://www.youtube.com/watch?v=nwPtcqcqz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