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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상한호랑이 Aug 23. 2023

개근상 공화국(1)

우리는 언제나 학교에 있었다

   학교에서 받은 '개근상'이 학교에서 받은 유일한 상이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록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더라도, 수업시간에는 책상에 엎어져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을지라도, 등교시간을 지켜서 학교 책상에 앉는 그 고귀한 삶의 루틴을 무려 1년에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켰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삶의 양식이다.

   그래서 몸이 너무 아파서 쓰러질 것 같더라도, 친구들과 관계가 틀어져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학교에 가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개근상을 받고자 하는 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숭고한 사명이다. 그렇게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태풍이 부는 것은 등교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 SBS

   개근상을 원하는 갈망은 온전히 그 학생의 순수한 내적동기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 점은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겪어온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상을 받는 경험은 자존감을 고양시켜 주고, 사회에 필요한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느낌을 선사해 줄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상'이라는 것 자체를 받기 싫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이 꼭 '개근상'이었으면 좋겠다고,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바라고 열망하는 학생들은 보기 드물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서 교과우수상을 받거나,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여 최우수상이나 금상, 은상 같이 이름만 들어도 근사한 상들을 받는 것. 이런 모습들이 아무래도 개근상 수상보다는 훨씬 더 멋있어 보일 것이다. 유튜버들도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골드버튼이나 실버버튼을 꿈꾼다. '꾸준한 업로드 상' 같은 걸 바라면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하늘 아래 같은 상은 없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주는 각종 '상'들이 내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먼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수여되는 교과우수상의 경우, 학생이 해당 과목에서 학교의 다른 동급생들보다 월등한 지적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해 준다. 반면 논술대회나 미술대회, 체육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학생에게 수여되는 상장들은 학생들이 특정한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시험 성적은 항상 꼴등이지만, 체육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반을 우승으로 이끈 친구가 살다 보면 분명 한 명쯤 있었을 것이다. 대회 성과는 이렇게 특정 분야에 뛰어난 학생들에게 돋보일 기회를 준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친구들 무리에서 친화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회장에 당선되어 임명장을 받는 것 또한 꽤나 명예로운 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개근상은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는 상인가? 개근상은 학교 규정에 의해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출석부에 단 하나의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이 없는 경우에 수여하는 상을 말한다. 학생이 지닌 '성실함'과 '근면성'을 인정해 주는 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개근상을 받는 것에 그렇게 집착해 왔다는 사실은, 자신이 가진 성실함과 근면성을 증명하기 위해 절실하게 노력해 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그동안 우리의 부모님에 의해, 선생님들에 의해 오래도록 지지받아왔다. 우리 사회가 학교에서 그렇게나 성실함의 가치를 강조해 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의 모습만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살짝 고개를 돌려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다음 그래프는 산업통계 분석시스템(ISTANS)에서 발췌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산업구조 중에서 1차, 2차, 3차 산업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보여준다. 또한 그 비중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1970년부터 2021년까지 52년간의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이기도 하다.

산업별 비중의 변화 양상 / ISTANS

   그래프가 나타내는 산업 비중의 변화를 보자. 먼저 농업, 임업, 축산업 등으로 구성되는 1차 산업의 비중은 꾸준히 하락하여 가장 최근인 2021년에는 1.96%를 기록했다. 반면 1970년에는 43.78%를 차지했던 3차 산업의 비중은 꾸준히 상승하여 2021년에 들어서는 62.47%에 이르렀다. 1차 산업에서 이탈한 산업의 비중이 서비스업과 같은 3차 산업으로 옮겨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2차 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에 2차 산업의 비중을 보면, 27.19%로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때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수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51년이라는 반세기의 세월 동안 2차 산업의 비중은 커다란 기복 없이 꾸준하게 유지되었다. 결과적으로 2021년 2차 산업의 비중은 1970년과 비교해 8%가량 상승한 35.57%였다. 소멸 위기에 빠져가고 있는 1차 사업의 현실과 대비된다. 결과적으로 2차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은 아니어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산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장에는 기계만 있는 게 아니다

   산업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유용한 여러 가지 물자나 용역을 만들어내는 체계적인 행위"다. 따라서, 어떤 지역에서 무슨 산업이 발달했느냐에 따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가치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그렇다면 먼저, 2차 산업의 특징은 무엇인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제작한 학습자료에 따르면 2차 산업이란 "1차 산업에서 만들어낸 물건이나 천연자원을 인공적으로 처리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에너지 등을 만들어내는 산업"을 뜻한다. 그리고 제조업과 건설업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2차 산업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많은 노동력과 넓은 소비시장을 필요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산업에서 노동력이란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인 능력을 통틀어서 말하는 개념이다. 어떤 산업이던지 간에 결국 그것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2차 산업에서 필요한 노동력은 그냥 노동력이 아니고 '많은 노동력'이다. 이 차이는 다른 산업군과의 차이점을 시사해 주는 바가 있다.


   2차 산업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곧, 산업의 현장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수의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차 산업을 지탱하는 큰 축인 '공장'은 제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 생산의 기반이 되는 생산 라인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투입되고,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현대의 공장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존에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과정을 기계로 대체하여 자동화한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고 한다. 현대에도 수작업이 필요할 정도라면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했을까. 아래 사진은 1970년대 전자부품 공장의 모습이다.

제조업의 현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 학민사

   빽빽하게 모여 앉아 몇 시간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노동자들의 애환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산 라인에서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능력이 요구되었을까?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생산량을 증대시키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소수의 관리자 혹은 자본가들의 일이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노동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매뉴얼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불평불만 없이 장시간의 노동을 마치 기계처럼 수행하는 성실함과 근면성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개근상을 통해 출석을 독려하던 학교의 모습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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