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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




2025.4.3. 적막 속에 감춰진 구슬픈 눈망울과 혈류의 요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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