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 시려워
외마디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 오고 때론 개었다 세 끼 식사는 한결같았다 아아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 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 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 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2025.4.4. 말라붙은 땅 위에 고적히 서성이던 기억의 저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