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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불빛의 집」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옹

by 수상한호랑이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 번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2025.4.2. 넌지시 향하던 행로에 시시비비 가릴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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