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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EATS Nov 15. 2019

오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민법적 '몸'의 계보학

장-피에르보 『도둑맞은 손』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논쟁거리들은 하나의 원인으로 납득하고 넘어가기엔 대부분 단편적이지 않다. 아주 오랜 기간 사회를 지배해 온 가치관이나 다양한 시각과 해석들이 병렬적으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심과 분석은 단편적으로 비춰지는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무기가 된다.


199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도둑맞은 손』은 생명윤리법에 대한 법적 탐구를 주제로 하는 책이지만, 주제를 넘어 저자의 탐구 과정을 따라가 보는 과정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을 의심하는 사유의 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생명윤리법이 제정되기 1년 전인 1993년에 역사적으로 법이 육체를 배제해옴으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윤리적, 기술적 오류를 촘촘히 분석하고 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려는 목적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장-피에르보는 수천 년의 역사에서 숨 쉬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해 논의할 바가 아니라 여겨졌던 인격과 몸,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신체의 일부에 대해 우리가 의문을 갖게끔 만든다.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라는 부제는 발칙하게 느껴지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울 순 있겠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를 던지는 것만 같다.


책은 ‘도둑맞은 손 공상-재판’으로 시작한다.


한 남자가 목공일을 하다가 전기톱에 손이 잘렸다. 그런데 이 남자의 원수가 손을 없애버렸다. 이 경우 남자의 원수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


손을 훔쳤으니 절도죄? 안타깝게도 이 경우 잘린 손이 물건이라 규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뿐더러 잘린 손에게는 주인이 없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 절도죄가 적용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신체를 훼손한 것이니 중상해죄? 프랑스 형법에서는 이것도 문제가 된다. 상해죄의 대상이 실체가 있는 몸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의 원수가 손을 없애버린 시점은 이미 손이 잘려나간 후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손 절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저자는 1장에서부터 이런 딜레마에 독자를 가두어놓고 시작한다.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우리가 응당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다는 초조함과 찝찝함을 거둘 수 없다. 저자는 이렇듯 당시의 프랑스 민법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포착한 뒤 그 법을 조각내고 파헤쳐간다. 나머지 15개의 장은 인격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가려져 있던 육체의 지위를 회복시키기 위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이뤄져 있다.


현대의 민법이 육체를 법의 테두리 바깥에 위치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작은 발견은 프랑스 민법이 토대를 두고 있는 로마법까지 이어진다. 마침내 저자는 로마법의 시빌리테(도시, 문명, 예의범절, 시민법 등과 연결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가 육체를 포섭하지 못했기에 수천 년 동안 육체는 법 안에 자리 잡지 못했음을 규명한다. 그리고 공법과 민법이 보호하지 못했던 육체가 어느 법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찾아가며 교회법까지 손길이 닿는데, 그 과정이 마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분석하고 범행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만 같아서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저자이기 때문에 자세한 저자 정보는 찾기 힘들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 저자가 굉장히 과감하고 호전적인 성격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총 16개의 장을 거쳐 저자는 몸을 인격에게 되돌려준다.


인간의 몸은 물건이고,
그 물건은 인격의 소유이다.


간단한 전제이지만 이것이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았기에 프랑스 민법은 너무 많은 오류를 짧지 않은 기간 모른 체해야 했다. 그리고 위의 전제에 대한 인정이 이뤄짐으로써 산업사회, 과학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토대로 한 육체의 법적 보호’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과감하게 뒤를 돌아보고 잘못 쌓아올려진 것을 해체하는 것은 대단한 진보이다. 목도리를 뜨다가 코 하나가 빠지면 빠진 지점까지 전부 실을 풀어버리지 않나.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처음과 끝의 폭이 다른 요상한 목도리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수천 년을 이어온 로마법-프랑스 민법을 향해 메스를 들이대는 과감한 시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법의 토대를 바로 세우기 위함일 뿐 아니라 미래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함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인간이 생각을 고치는 속도보다 빠름이 분명하다. 법으로 보호해야할 대상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기술에 휘둘리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고, 오류가 있는 법은 인간을 소외시킨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과거에 놓쳤던 오류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미래의 질문에 응답하는 힘이 미미할 수 밖 없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오랜 기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나오면 그 시작은 비록 잔잔했다 한들 파장은 넓게 퍼져나가 사회를 뒤 흔들기 마련이다. 호주제, 동성 간의 결혼, 남녀의 임금차이 등이 그것이다. 주류의 목소리는 그들이 생각하는 틀에 모든 사람을 넣어놓고 그 바깥의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다는 이유로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수혈을 비롯한 생명공학의 진보 앞에서 민법의 오류를 포착하고 ‘해체-다시쌓기’의 과정을 거쳐 육체의 지위를 찾아주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사회 및 제도상의 문제를 발견하면 때로는 과감히 부수고 새로 쌓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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