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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속가능 스튜디오 Jul 17. 2017

영어와 담쌓아 행복했던
영알못 남자에게 닥친 위기

스웨덴에서,그 남자 그 여자의 영어 이야기 (남자)



스웨덴에 사는 너무나 다른 두 남녀, 남편과 아내, 즉 우리 부부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스웨덴에서의 영어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내는 스웨덴에서 석사 공부를 하며,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과제를 제출할 때도 늘 영어를 쓴다. 남편인 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을 만날 때, 필요한 말을 할 때, 영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다. 일단 오늘은 부부 중 더 큰 고통을 겪었다 자부하는 '남편',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겠지만 스웨덴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편한 나라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심지어 영어를 무척 잘한다.(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영어 유창성 1위 국가 스웨덴.) 덕분에 스웨덴에 살면서 스웨덴어에 대한 부담은 덜었지만 영어에 대한 압박과 필요성은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스웨덴에 사는 '유학생' 아닌 진정한 '생활인'인 내가 영어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스웨덴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영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영알못 남편

-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된 영어의 필요성

나는 스웨덴에 오기 전까지 영어로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지 않았다. 그건 영어를 잘하거나 외국 유학을 오래 했기 때문이 아니고 실은 정반대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6차 교육 과정 마지막 세대라서 영어 과목이 없었고(당연히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학원은 다녀 본 일이 없다.) 중학교에 가서 영어라는 과목을 처음 접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club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고서 '클로버'라고 읽었던 부끄러운 나의 과거...)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회화보다는 단어와 문법, 독해 위주의 수업을 듣다 보니 영어 역시 사회, 물리, 수학처럼 암기하고 문제 풀이를 반복해야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성적은 그럭저럭 나와서 영어 교과에 크게 신경을 안 썼고 학창 시절 영어를 좋아해 영문과에 진학한 아내처럼 영어에 큰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문과 문과 체질이라 수학을 어려워하셨는데 아들이 그 피를 물려받아서 수학을 못할까 봐 오로지 수학 성적만 걱정하셨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수학을 못 했다 허허 ㅠ) 내게 영어는 여러 과목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같은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문법, 독해 위주로만 영어를 알아갔다. 덕분에 지금도 "How are you?"라고 누가 물어보면 대답은 꼭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해야 할 것만 같다.

수동태와 5형식, 현재 완료와 진행형 등의 문법과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영단어들을 새벽까지 외우면서 수능 준비를 했고 무사히(?)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질릴 만큼 공부를 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면 '무조건 놀아야겠다'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고등학교 이후 놓아버린 다른 과목들처럼 내 영어 공부 역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난다. 최근까지 10년 넘게 영어 무식자로 살면서 '내 인생 평생에 영어는 필요 없겠구나. 나는 운이 좋아. 후후후'라면서 룰루랄라 기뻐하며 살았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더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 스웨덴에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다녔던 교대는 일반 대학과는 조금 달라서 영어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았다. 물론 우리 학교 안에서도 영어과가 있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많았다. 나도 학부 중에 필수 교과였던 영어 관련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다른 대학생들이 토익 점수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어학연수 및 대학원 진학을 위해 토플, 아이엘츠, 회화 학원 등을 다닐 때 나나 내 주변 친구들은 뜀틀을 넘고 장구를 쳤으며 포크 댄스를 배웠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을 당시에는 우리 학교에는 해외 어학연수,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많이 없었고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교환학생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도 극히 드물었다. 무엇보다 교대생들은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초등학교 교사라는 진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학부 공부 -> 임용 고시 ->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다. 그 과정에서 어학연수, 교환 학생, 토익 성적은 그다지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실은 이게 다 핑계지만~~)

임용에 합격하고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영어는 크게 필요치 않았다. 요새는 아이들이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긴 하지만 내가 영어 전담 교사가 아닌 이상(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영어를 잘 하신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영어를 쓸 일도 없고 내가 영어 숙제를 내줄 일도 없다. 그렇다. 지난 30여 년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운 좋게(?) 영어와 깊은 인연을 맺지 않았다. 홍대나 이태원 길거리를 걷다가 낯선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본 적조차 한 번 없을 정도로 나와 영어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


- 평생 영어가 필요 없을 줄 알았지?

영어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환경 속에 살다가 어느 순간, 영어와 스웨덴어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곳, 스웨덴에서 살게 되었다. 스웨덴 생활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일은 아니지만 영어든 스웨덴어든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가 유학 준비를 할 때, 나는 '같이 스웨덴에 가겠구나. 영어 공부를 해야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솔직히 언어 문제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한 긍정 혹은 별생각 없음의 마음을 가지고 실제 스웨덴 생활을 시작했지만 살면서 언어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이 커져갔고 점점 '세상 사람들이 영어 대신 한국어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거나 '영어 필요 없다고 배짱부리면서 공부 안 했던 걸 지금에서야 벌 받는 건 아닐까?'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스웨덴 생활을 시작하며 내 머릿속에는 이런 물음표들이 가득했다...

.

하지만 이런 헛된 희망과 바람은 부질없었고 내가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당연히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스웨덴에 왔으니 스웨덴어를 배우고 스웨덴어로 대화를 하는 게 더 좋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를 무척 잘 한다. 그 덕분에 영어만으로도 스웨덴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이건 우리 같은 외국인에겐 큰 축복이다.(현재 나는 스웨덴어를 배우고 있지만 그래도 가장 오래 배우고 가장 친숙한 영어를 공부하는 게 지금의 내 상황에선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자국의 언어만 사용하는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면 언어 장벽을 절실히 느끼고 매일의 삶이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어만 할 줄 아는 외국어 무식자에게는 '영어'가 큰 도전이자 장애였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뻘쭘뻘쭘했고 혹여 나한테 말을 걸거나 뭘 물어보면 어쩌나?라면서 노심초사 주변을 살피기에 바빴다. 그러는 와중에 영어로 자연스레 대화를 하는 그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 어찌나 부럽던지... 그리고 '나는 왜 영어를 못하지?'라며 매일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영어를 공부한 적 없고 해외 유학이나 교환 학생 경험도 없었으니 영어를 못 하는 게 당연한데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더해 스웨덴 대학원 지원을 위한 토플 공부를 하면서 영어 스트레스는 극도로 올라갔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토플 리스닝은 안 들리고 스피킹은 버버벅 거렸으니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보단 좌절감이 컸다.

결국 토플은 목표한 만큼 점수가 안 나와서 대학원 진학은 물 건너갔고 내 영어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웨덴에 살고 있었고 생존을 위해선 '언어'가 필수였다. 샌드위치 가게에 가서 싫어하는 오이를 빼 달라고 말하려면, 체인이 빠진 자전거를 수리하는데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집 친구에게 안부라도 물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스웨덴에서 살기 위해선 그리고 나를 위해선 영어가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평생 영어가 필요 없겠지. 후후후'라며 안일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다닐 때,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할걸...'과 같이 좀처럼 해본 적 없던 공부에 대한 아쉬움도 밀려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여전히 나는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 그럼에도, 영어와 씨름을 하며 배운 것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우울해진다. 갑자기 주변 공기도 점점 축축해지는 것 같고.(허허)
그럼에도, 영어로 고군분투하던 지난 1년 동안 얻은 것, 배운 것들이 많다. 특히 같이 석사를 하자는 아내의 꼬임(?)에 넘어가 토플 공부를 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분명한 장단점이 있었다. 장점부터 이야기해본다면 무엇보다 시험 날짜를 정해두고 '철저한 계획' 아래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어 공부'라 함은, 누군가 끌어주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생활 영어 공부를 하면 한없이 늘어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토플이나, 토익, 오픽 등 특정 시험을 준비하면서는 확실히 특정 교재, 범위, 공부의 방향성과 시간적 데드라인이 정해져서 강한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다. 특히 나는 시간표를 짜고 계획에 맞춰 공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 시험 준비를 하면서 되려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토플'이라는 공부할 것이 정해져 있고, 교재로 공부하다 보니 '뭐부터 해야 하지' 고민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다.

반면, 토플 공부를 했던 시간을 돌아봤을 때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를, 그것도 '오래' 하다가 '영어에 질려버렸다'라는 것이다. 많은 친구들이 토익, 토플 공부는 단기간에 빠르게 끝내는 것이 좋다고 했었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한다. 토플을 시작할 때부터 토익도 한 번 안쳐본 내가 토플을 준비하는 것이 말이 되나? 반신반의하며 초급반을 수강했다.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올라가며 함께 공부하던 수강생들이 정말 많이 포기했다. 공부를 장기간 하며 질질 끌다 보니 다들 초반의 파이팅이 사라지고 영어 공부에 질려버린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 긴 기간을 거치고도 살아남았고 토플을 치러내긴 했다. 물론 당시에는 목표 점수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그렇게 깔끔하게 포기를 했어야 했나 생각도 많이 했다.

그 이후 스웨덴에 왔고, 아내의 꼬임(;)에 한 번 더 넘어가 독학으로 다시 토플을 준비했다. 당시 약 3개월 정도 혼자 시간표를 짜서 공부를 하면서 영어가 많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영어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것+스웨덴에서 혼자 공부한 것을 합치면 약 7개월간 토플 공부를 한 셈인데, 그 기간 동안 토플에도 질리고 영어에도 질려버렸다. 수능 영어 공부 이후 10년 만에 토플로 영어를 다시 시작했으니...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한 도전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스웨덴에서 친 시험에서는 아깝게 목표 점수를 달성하지 못했지만(3점만 더 받았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정말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딱 접고 스웨덴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시험의 압박 없이 공부하니 훨씬 재미있었다. 토플 좀만 더 해보자며 나를 꼬드기던 아내도 스웨덴어 공부하는 나를 보며 훨씬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험난한 토플 도전기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 같은 영알못이 처음 영어를 시작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시작해야 도리어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알못이 수준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면 아예 영어를 알고 싶지도 않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 그래서, 나는 정말 늦은 걸까?

막차를 놓친 심정이 이런 마음일까?

스웨덴 생활이 1년 정도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영어와 스웨덴어 어느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외국인(여기선 내가 외국인이지만 편의상 이렇게 사용한다.) 울렁증이 있고 누군가 내게 다가오기라도 하면 지레 긴장이 된다. 그들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듣는 부분이 훨씬 많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웃음이나 무표정으로 얼버무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웨덴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보다는 영어로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줄었다. 영어를 완전히 포기한 것도, 1년 전보다 영어가 유창해진 것도 아니지만 과거와 비교해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는 영어를 못하지만 아는 단어로 차근차근 말을 전달해보자.', '그 사람 말을 이해 못하겠으면 무조건적으로 고개부터 끄덕이지 말고 다시 한번 설명해 달라고 말하자.'와 같이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내가 영어를 못할 수도 있지!'하며 뻔뻔해지진 못했어도 '내가 영어로 정확히 말해야 하는데...'와 같은 조급함은 덜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때는 아내가 곁에서 많이 도와줘서 내가 못 알아듣는 부분이나 표현하기 어려운 문장들을 말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환경적으로도 영어(스웨덴어)를 계속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영어에 좀 더 자주 노출되고 영어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어지는 것 같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라는 박명수 씨의 말은 내게 많은 울림을 준다. 나 역시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기엔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이 꼭 포기를 종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말 늦은 때임을 깨닫고 상황에 맞추어 꾸준히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결실은 맺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물론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기에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돌아가서도 영어 공부는 쭉 하려고 생각한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미래의 어느 순간, 또다시 외국 생활을 할 일이 생긴다거나 해외에 가서 좀 더 편안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 영어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된다. 영어가 누군가에게는 입사, 대학원 진학, 유학을 위한 스펙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잘 배워서 쓰면 편리하고 손에 익으면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여겨진다. 아직은 그 도구를 다루는데 서툴고 어려움이 많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좀 더 편안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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