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지와 감자 그리고 맥주
플랑드르는 유럽 북부 '저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적인 지역이다. 드넓은 저지대 평야는 감자 따위의 구황 작물을 수확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고 휴경지 방목으로 축산이 성행할 수 있었다.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는 가공육 보존에 적합했고 플랑드르 사람들은 구황 작물과 소시지를 비축해 겨울을 났다. 과거부터 줄곧 감자와 소시지를 먹어온 전통은 현재까지도 여전하다. 소시지와 감자를 곁들인 한 접시에는 플랑드르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트에서 사 온 생소시지와 감자를 꺼냈다. 신경성 위염으로 채식만 이어가던 내게 마치 수렵채집인에 빙의한 원초적 식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애진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소시지에 감자를 곁들인 한 접시가 플랑드르 지방의 전형적인 저녁 식사라고 했다.
그녀는 늘 식전에 맥주 한 병을 컵에 따라 감자칩과 초리조를 곁들여 마셨다.
버터에 볶은 파슬리와 커민은 감자의 풍미를 돋우고 소시지는 센 불에서 겉이 타들어 갈 만큼 굽는다. 뒤뜰에서 갓 따온 유월의 푸성귀는 휘저은 홀스래디시 드레싱에 성큼성큼 버무린다.
머스터드를 끼얹은 소시지 한 조각에 부드러운 감자 한 입, 입안이 텁텁할 즈음 상큼한 푸성귀로 목을 축이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 플랑드르를 음미한다. 저지대의 풍요가 밀려온다. 스마클릭, Smakelijk ! (스마클릭, Smakelijk _ '잘 먹겠습니다'라는 뜻의 네덜란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