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하는 한여유의 질서 (1)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스스로 깊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토록 순수하게 음악을 진정으로 대한 적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음악을 해오고 주변의 많은 음악 하는 사람들을 봤지만 그녀만큼 음악을 진정으로 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그녀와의 대화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그녀가 한 말들이 한 마디도 남김없이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작곡가가 만나는 인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 <인디 View>.
세 번째 주인공인 싱어송라이터 한여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A. 한여유 :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 하는 싱어송라이터 한여유입니다.
Q. <나름의 질서>로 작년 9월에 데뷔하고 난 뒤에 벌써 10개월이 지났어요. 곧 있으면 1주년이 되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A. 한여유 : 감사하기도 하고 동시에 실감이 잘 안 나요. 쉬는 동안에도 꾸준히 음원 준비나 연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걸 체감을 잘 못한 것 같아요. 제 이름으로 나온 음원을 사람들이 들어주신다는 것도 아직 실감이 안 나고요. 사실 곧 1주년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Dike : 맞아요. 저도 그런 일들이 실감이 안 날 때가 있어요. 쉬는 동안은 어땠나요?
한여유 : 음원 준비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첫 음원이 나오고 난 뒤 오히려 슬럼프가 왔어요. 한동안 음악도 듣지 못하겠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어요. 올해 3월 정도에 들어서야 다시 공연을 하고 음원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1년이 아니라 반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오히려 이렇게 지난 10개월이 아쉽기도 하고 지금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한여유’라는 이름이 인상 깊어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의 느낌이나 가사, 이름까지 굉장히 문학적인 분위기의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했어요. 본명인가요?
A. 한여유 : 본명은 ‘황 보람’이에요. 그런데 같은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 이미 많더라고요. 또 제가 직접 이름을 지으면, 그에 대한 책임감이 생길 것 같아서 예명을 만들게 되었어요. <나름의 질서>를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20살 이후에 대학교를 오면서 온전하게 쉰 적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바쁘게 산 것 같아요.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여유’라고 짓게 되었고 ‘한’이라는 말은 형용사를 붙이기 쉬워서 붙이게 되었어요. 행복한 여유, 고요한 여유, 평안한 여유 같은 말들처럼요. 그래서 ‘한 여유’라고 하게 되었어요. 이젠 포털 사이트에 동명이인이 없고 조선 후기 학자만 있어요.(웃음)
문학적인 분위기라는 건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시인이시거든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항상 다독을 하셔서 TV보다 부모님이 책을 읽는 모습을 더 많이 봤어요. 한 번은 어머니에게 우울하다고 얘기했더니 책을 읽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조언이 아닌가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책을 읽으면 감정이 깊어져서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며 권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지식 너머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가사에도 책에서 얻은 단어나 느낌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아마 문학적으로 느껴졌다는 게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히려 어머니가 시인이라고 느껴졌던 건 20살 이후부터였어요. 그 전에는 학교 공부만 하고 그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가사를 쓰고 시집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어떤 글을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얻어지는 게 많았어요. 지금은 가끔씩 가사를 보여드리면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알려주셔요.(웃음)
Q. 인디View의 고정 질문입니다. 성장과정이 궁금해요. 본인의 일생을 짧게 얘기해 준다면.
A. 한여유 : 저는 집에서 연구대상감이라고 부를 정도로 말괄량이 막내였어요. 부모님 말에 꼭 한 번씩 대꾸하는 아이였죠. 공부에도 흥미를 애매하게 가져서 강요에 의해서 했던 편이었어요. 외고를 지원하는 등 남들 하는 건 다 따라서 해봤어요. 그러다가 중 3때 한 친구를 만난 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멋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준 친구예요. 그 친구로부터 변화되어 반장이나 부반장, 학생회 같은 일도 해보고 친구를 대하는 마음도 배웠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가 추억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너무 행복하고 아프기도 한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남들이 20대 중반까지 겪을 일을 그때 다 겪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20살이 되어 대학을 왔어요. 제가 울산 출신인데 대학을 온 직후에는 서울에 동네 친구도 아무도 없고 이렇게 사람이 외롭고 고독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껴본 거죠. 정말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휴학을 하고 친오빠와 유럽여행을 갔어요. 그게 제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되었죠. 그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날 엄청 신경 쓰는 것 같았는데 의외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도 되겠다는 걸 배우게 됐어요. 그 이후엔 학교 안에서도 아싸로 지냈는데, 아 자처한 거예요(웃음) 전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영어도 공부하고 싶어 져서 국제 교류원에서 교환학생들을 케어하는 어우라미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2년 동안 활동했고 그때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음악은 7살 때부터 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인기가요 같은 음악방송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졌는데 19살까지는 막연히 서울에 올라가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20살이 되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뭘 할지 몰라서 헤매다가 이렇게 미뤄두면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우라미 활동이 끝나자마자 <나름의 질서> 준비에 들어가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2016년 1월 1일에 김광석 다시 부르기 본선 진출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사실 타 전공생이라 음악적으로 평가받을 일이 드물었는데, 누군가가 내 음악을 듣고 긍정적인 결과를 내려준 것이 처음이라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나가서 우쿨렐레 상까지 받게 되어 더 용기를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음악을 꼭 해야겠다고 느낀 건 김동률 선배님의 콘서트에 콰이어로 섰을 때에요. 그때 음악을 대하려면 이런 마음과 정성으로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책임감과 사명감 같은 것들이 생겼죠.
Dike : 김동률 님의 콰이어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한여유 : 당시에 음악을 배우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하게 되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3일이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에요. 그때는 콘서트가 끝나고 집에 가서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썼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리고 지오디 콘서트의 콰이어를 한 적도 있는데 맨 앞에 서게 되었었죠. <촛불 하나>라는 곡을 할 때 셔플 리듬으로 박수를 치는 부분이 있었는데 god선배님들 앞에서 리허설을 하니 너무 긴장이 되었죠. 그때 박준형 님이 갑자기 저에게 엄지를 내밀며 ‘박자 진짜 잘 탄다’, ‘진짜 멋있다’라고 해주시고 데니안 님도 엄지를 탁 치켜세워주시는 거예요. 그때는 아직 제가 음악을 제대로 배우거나 잘 하고 있던 때가 아니라서 그 말에 ‘내가 정말 감각이 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정말 큰 힘과 자신감이 되었어요.
사실 음악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이 항상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제 인생 모토가 후회는 하지 말자는 것이거든요. 아무리 실패를 해도 결국 배우는 게 있더라고요. 음악을 전공한 게 아닌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것도 좋고 어우라미 활동을 한 것도 좋았어요. 견문이 넓어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이런 부분들이 음악에도 묻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상에도 관심이 많아 디지털 미디어학을 복수 전공해서 자연히 영상 관련한 수업도 들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구도 같은 부분이나 아이디어에 관해 제가 직접 의견을 내고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서, 제가 아쉬워했던 순간이 음악을 하는 과정에 묻어 나온 경우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a8CA3lofHNI
Q. <나름의 질서>에서 <나는 가끔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까지 7개월의 시간이 걸렸어요. 요즘 아티스트들이 곡을 내는 속도에 비해 꽤 여유가 있게 다음 음원을 발매했는데 특별히 시간을 들인 이유가 있을까요?
A. 한여유 : 앞서 얘기했듯이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왔었어요. 사실 <나름의 질서>를 내고 그 해에는 한 번도 그 곡을 끝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고 너무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오히려 너무 못하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래도 결국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음악뿐이라서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작업해 놓은 곡들 중 애정이 가는 곡이 어떤 곡인지 생각하다가 <나는 가끔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가 진심을 200% 이상 쏟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올해 3월부터 다시 힘을 내자고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계속 곡을 쓰긴 했지만 내고 싶을 만큼 마음을 충족시키는 곡이 없어서 오래 걸린 것 같아요.
Q. 가사가 굉장히 인상 깊어요.
한여유 : 그 말 들을 때 굉장히 행복해요.(웃음)
Dike : 그렇군요.(웃음) 앞서 말했듯이 음악의 분위기와 매치돼서 굉장히 문학적으로 들려요. 뮤직비디오도 그렇고요. 꽤 성숙한 정서의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고 느껴져서 더 집중해서 듣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제목도 시선을 끌고요. 특별히 가사에 신경을 쓰는 편인가요?
A. 한여유 : 가사에 신경을 쓴다기보다는 거짓말을 안 적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억지로 쓰려고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진짜 안 써지더라고요. 그러다 누군가와 이별을 겪고 난 뒤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다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훅 쓰인 게 <나는 가끔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였어요. 그때 느꼈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데 그대로 가사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형식에서 벗어나 제가 느끼는 것들을 이것저것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Q. <나름의 질서>에서는 곡은 밝지만 ‘감정의 무뎌짐’에 대한 정서가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모두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안고 살아간다는 표현도 공감이 되어요. 어떤 생각으로 만들게 된 곡인가요? 곡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A. 한여유 : 모든 건 나름대로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고 유럽여행 이후로 그걸 지키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러다 언젠가 한번 어떤 사람에게서 무례하다는 느낌을 크게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분은 왜 사람들이 나름대로 지켜가는 질서가 없지? 나와 저 사람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왜 그걸 무시하는 거지?’라고 느낀 게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충격을 받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냥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며 무디게 느끼게 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많은 것들을 겪었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런 이야기들도 담담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난 7월 9일, 한여유 님의 신곡 <뱅뱅뱅>이 발매되었습니다!
그녀의 신곡, 모두 함께 들어보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dfCuobBdoOw
음악으로 하는 깊은 이야기, 한여유의 음악 Part 2는 7월 19일 목요일에 업로드됩니다.
그녀가 말하는 한여유의 질서 (2)
싱어송라이터 한여유를 만날 수 있는 곳
Insta : https://www.instagram.com/faithful.h/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 '안고독한 한여유' 검색
네이버 뮤지션리그 : https://music.naver.com/musicianLeague/musician/index.nhn?musicianId=8679
인디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인디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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