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나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외로움과 우울감에 짓눌려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멀쩡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이상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대략 지난 6개월 이상을 흔히 얘기하는 인생 현타를 맞이하고 무기력과 우울함에 빠져 지냈다. 그 결과로 멀쩡히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아무런 이유 없이 퇴사해버렸고 두 달 가까이 아무 계획 없이 퇴직금을 소비하며 흐느적거리는 정신과 몸으로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최근엔 슬슬 다시 정신을 잡고 일을 시작하고 평소대로 레슨과 곡 작업을 병행하며 원래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딱히 회복이 되었다거나 무언가 극복을 해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언제까지나 우울감에 빠져 내 삶이 망가지는 걸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통장잔고를 마냥 바닥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극복되지 않았다. 다만 하나 얻게 된 것은 이전에 없던 깡과 무신경함이랄까. 이제 삶에 대한 미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이러다가 굶어서 죽든 말든, 일이 잘 풀리든 망하든 상관없어졌을 뿐이다.
긴 반년 이상의 우울함에 허우적대는 동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생겼다. 그동안 나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연약한 인간인지라 외면하고 싶어 했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생을 혼자 생활하며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늘 생존을 위한 삶을 보내기 바빴던 나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약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부정하고 외면해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도 잘 만나고 얘기도 잘하고 있다. 언제나 내 편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최소 3명 이상은 된다. 항상 애정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선배도 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깊은 신뢰관계의 10년 지기의 친구도 있다. 어느 집단에 들어가도 잘 적응하고 원만하게 지내는 편이고 오히려 굉장히 잘 지내는 편이다. 다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내가 느끼는 문제들은 별개의 문제로 다가왔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들의 존재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어렸을 때는 IMF를 관통하면서 꽤 많이 이사를 다녔다. 물론 부모님과도 같이 살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고 학교를 가도 어느 정도 친해질 만하면 전학을 가곤 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아침부터 학교를 시작으로 마지막 학원에서의 일정까지 하루의 스케줄이 끝나면 어김없이 새벽 1, 2시쯤이 되었다. 당시의 내가 항상 가졌던 의문은 겨우 하루 일정을 끝내고 이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쉬고, 여가를 즐겨야 할 시간에 거리에 나와 보니 세상은 이미 잠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은 나만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20살이 되어 대학교를 서울로 오면서 지금까지 타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 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신촌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까지 포함하면 지금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서울이 되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서울 생활에 지쳐있었다. 대학교를 간다는 건 사실 공부를 하러 간다는 뜻이 아니었다. 현실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값싼 아르바이트 인력을 제공해주기 위해 대학교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서울로 모여든 내 또래들은 아르바이트에 시간과 온 힘을 바쳤고 나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루에 3개의 알바를 매일 하면서도, 그렇게 번 돈으로 내가 얻은 건 겨우 이 도시에서 숨쉬기 위한, 존재하기 위한 자격을 얻었을 뿐이었다. 월세와 공과금, 연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식비와 교통비, 생활비를 제외하면 남는 건 없었고 결국 모두 스쳐 지나가는 돈일 뿐이었다.
서울에서는 적어도 1, 2년에 한 번씩은 매번 이사를 다녔다. 홍은동에서 살다가 미아사거리로 갔다. 동대문에도 있었고 은평구 일대, 종로 등 정착할만한 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계약이 2년 단위이니 최소 2년엔 한 번씩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삶이 너무 싫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이사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게 끔찍했다. 하지만 난 매번 더 싼 곳을 찾아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서울에 사는 동안 항상 가장 많이 얘기하며 시간을 보낸 건 그때마다의 여자 친구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들은 내가 이사를 하는 타이밍마다 나와 헤어졌고 사는 환경, 만나는 사람, 그리고 나의 상황들이 바뀌는 지점이 이사를 하는 지점을 기준으로 변화하면서 그때마다 내가 이전에 이렇게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삶이 바뀌어갔다. 그리고 내 삶의 연속성을 잃어버렸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그렇게 매번 타인의 삶처럼 기억된 시간들을 뒤로하고 허무감에 빠진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했다. 그건 그렇게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성향을 가졌다. 쓸데없이 성실하고 착한 타입들이다. 공부를 열심히들 했었고 대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대개 어른들이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일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주관으로 그런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의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왔고 변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서 실패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는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살아왔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지,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지, 지금 눈앞의 일에 어떻게 최선을 다할지에 관한 얘기들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방향임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내가 작년 말부터 느꼈던 감정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언제까지 열심히 해야만 하지?’였다.
서울에 와서 만난, 이제 10년 지기가 된 친구는 여전히 같이 작업을 하고 매일 연락을 하는 사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인 것도 서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리는 어느새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비즈니스 이야기만 하는 사이가 된 것은 나에게 큰 데미지가 되었다. 서로 사적인 얘기를 하기엔 매일 해결해야 하는 공적인 일들이 쌓여있었다.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렇게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일이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 법도 하지만 대게 우리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서로의 삶과 프라이빗한 부분을 잘 존중한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각자의 여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나 역시 그 시간에 내가 끼어들어가지 않았다. 어느새 친구들과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몇 년 전까지의 시점을 기준으로만 하게 되었다. 요즘의 삶에 관한 것들을 일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일을 하게 된 친구들이 아니어도 같은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자신의 삶과 일터에서 바쁜 매일을 보내고 연락은 없어지고 일 년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들 그럴 것이다. 원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바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 모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다만 그렇게 나는 항상 혼자 있게 되었다.
<인디View>라는 인터뷰 매거진을 진행하면서 나는 매달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최근 경다솜이라는 아티스트와 얘기를 나눴다. 동갑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단시간에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고 꽤 친해졌다. 물론 그녀는 아직 낯을 가리는 것 같지만.
그녀가 자신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한 얘기는 내게 충격을 주었다. <너의 시간>이라는 곡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사람은 아무리 밝아도 누구나 자신만의 외로움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서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눈앞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이제 그걸 알게 된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알았을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내가 외로웠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그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겠지만 결국 어떻게든 계속 살아나갈 것도 알고 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해결될 문제라고 얘기하지만 딱히 그럴 만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후...) 여전히 외롭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고 살아가고, 거기에 지쳐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삶에 대한 어떤 미련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전히 힘들 얘기를 나눌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만날 수 없다. 물론 이제 굳이 그런 얘기를 나눌 생각도 들지 않는다. 뭔가 머리가 복잡해지면 한강에서 혼자 맥주를 마실 뿐이다.
어차피 행복하지 못한 삶이니 아무렇게나 살자는 생각이 생겼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는 쓸데없이 성실하고 열심히 살지 않을 거다. 어차피 미련 없고 의미 없고 희망 없을 인생. 내가 그렇게 이해하지 못했던 욜로로 살고야 말 거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지만 결국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외로웠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