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기다릴게요 / 한수남

by 한수남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고

노인은 딸을 기다리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네


딱! 기다리고 있으라는 그 말에

몇 발 움직이지도 못하고 빙빙 맴도는

터미널 대합실이나 길모퉁이 전봇대 앞.


사람은 오지 않고 어두워져 가면

사람은 오지 않고 찬바람이 불면


아이는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짓밟고

노인은 길바닥에 주저앉고

여자는 쓸쓸히 차표를 끊네


이제 다시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입술을 깨무네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

백번쯤 들은 그 말을 이제 길바닥에 버리네, 내동댕이치네.


사람아, 울지 말아라

아이도, 노인도, 여자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길

이상하게 새로운 힘이 솟아나기를


사람아, 울지 말아라

가다 보면 또 새로움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만날 수도 있으리라.


전봇대 옆에 핀 가을들꽃, 가로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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