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서 읽는 시집

by 한수남

정류장에서 읽는 시집 / 한수남



이놈의 선생 짓 참말로 못 해 먹겠다 싶을 때

그때 하필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의 눈빛은

왜 그렇게 새까맣게 빛이 나는지요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당도한 정류장

이 많은 행선지 중에 왜 막상 갈 곳은 모두

멀어, 멀어지는지요.


챙겨나온 시집 한 권 무릎 위에 펼쳐놓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시(詩)를 읽으면서

덜컹덜컹, 시인의 고향에나 한번 가볼까요

김밥 한 줄 사갈까요, 삶은 달걀도 살까요?


저는 결국 떠나지 못하리란 걸

이 시집은 알고 있다는 듯

좀처럼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네요.


세상 느린 속도로 제 발목을 잡은 것은

정류장에서 읽는 시집인가요?

우리 반 아이들 새까만 눈동자인가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주문진 바닷가 정류장 (지인이 보내준 사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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