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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Mar 16. 2023

한국인에게 전하는 한국의 맛

오래전 미국에 이민 가서 사시는 남편의 절친이 이번에 와이프랑 같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얘기를 한 달 전부터 전해 들었다. 일 때문에 들어오는 거긴 하지만 제주여행의 목적도, 지인과의 조우도 겸한 방문인 것 같았다. 한국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 한국은 늘 그리움의 땅이라는 건 타지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빛에 멍울처럼 번진다.

남편의 친구에게도 한국은 늘 향수에 젖게하는 엄마 같은 땅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같이 본 적이 있던 친구부부는

어색한 사이는 아니지만 부부동반으로  방문은 처음이라 이래저래 신경이 많이 쓰였다.

제일 먼저 마음이 쓰였던 건 집에 대한 이미지였다.

집이 좋거나 인테리어가 화려하거나 집이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정돈된 느낌을 전해주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집이라는 건 어쩌면 내가 가진 느낌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유형의 모습이다.  민낯의 얼굴이어도 정돈된 집에 사는 사람은 한결 고상하고 품격이 있어 보인다.(사실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단정하고 정감 있는 얼굴로 친구부부를 맞이하고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겨울잠을 자듯 웅크리고 있던 집안의 잡다한 물건들은 갑자기 자기 자리를 찾기 바빴다.

먼지에 쌓여있던 짐들과 정리되지 않았던 옷가지들,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들은 흐트러졌던 마음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조금은 촌스럽지만 어색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듯한 수줍은 얼굴이 집안의 곳곳에 묻어났다.

조금은 빛바랜 물건들도 처음 보는 얼굴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다음은 식사 대접이 문제였다. 한국은 사실 어딜 가나 맛집 천지였고, 굳이 내가 집에서 정성을 다하지 않아도 나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의 집으로의 초대는 기본적으로  식사대접이 예의인 것 같았다.  어쩌면 점점 바빠지는 사회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거스르는 관행 같았지만 나는 옛날 사람이기에 그 문화를 어그러뜨리는 일은 내가 마치 한국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집 근처에 이삼일 묵을 거란 얘기를 듣고 나는 또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은

어쩌면 외국음식이 많다. 아이 생일에는 스파게티나 피자 스테이크, 어른 생일에는 회나 중식을 먹고, 또 가끔 일상적인 외식을 할 때는 베트남음식이나 멕시코음식을 먹기도 한다.

한식은 집에서 매일 먹는 음식이라 그다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아무래도 한식일 것 같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 어려운 수학문제를 접한 것처럼 막막했다.

물론 외국에서도 거의 한국음식을 해 먹긴 하지만

맛은. 한국재료로 만든 깊은 맛은 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고민을 하자 남편은 근처 맛집에서 대구탕을 사고 내가 잘하는 잡채를 하라는 조언을 했다.

하지만 왠지 대구탕과 잡채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문득 우리나라의 정월 보름날이 떠올랐다.

나물에 오곡밥, 김치 그리고 국은 청국장이 어울릴 것 같았다. 메인요리로는 생일 때 자주 해 먹던 불고기와 잡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좀 더 상차림을 이쁘게 하기 위해 뜬금없지만 연어샐러드도 하기로 정했다.


머릿속에 그려진 메뉴는 몇 가지 안 되는  것 같지만

혼자 짧은 시간 안에 다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틀에 나누어 음식을 준비했다.

식사전날 저녁에는 시래기와 고사리나물을 볶아놓고, 불고기를 재워놨다. 식사날에는 나머지나물과 잡채 청국장 연어샐러드를 하기로 했다.


음식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나물이었다.

불리고, 다듬고, 씻고, 삶고, 볶기.

한 가지가 아니라 다섯 가지나 되는 나물을 해야 하니 손이 바빴다.

5가지 나물

잡채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야채를 채치고 볶고 버무리고..


잡채

불고기는 내가 한 음식 중 아주 간단한 음식이었다.


불고기

그리고  애를 먹었던 건 청국장이었다.

대충 끓이는 청국장은 맛있는 청국장만으로도 적당한 맛을 낼 수 있지만 나는  좀 더 특별한 맛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명 다른 사람의 레시피를 참고했다.

우선 차돌박이 고기를 김치랑 들기름에 볶았다.

사골육수와 물을 적당량 넣고 된장도 한 스푼 넣었다.

그리고 청국장은 된장을 넣은 양만큼 빼고 넣었다.

표고버섯 호박 당근 마늘 파 청양고추를 넣고 한 소금  끓였다.  차돌박이와 사골육수를 넣은  청국장은 맛이 깊었다.

조금 짠 것 같아 물을 좀 더 넣은 것 말고는 그럴 듯이 완벽한 맛이 되었다.

과장해서 청국장 맛집이라고 할 만큼의 맛이었다.


깊은 맛이 나는 청국장

드디어 연어샐러드와 밑반찬과 김치가  어우러진  한국인의 밥상이 완성되었다.


참깨드레씽을 얹은 연어샐러드


김장김치와 겉절이와 밑반찬


한국인에게 전하는 한국의 맛

이틀 동안  아니 고심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식탁은 생각보다는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자 했던 한국의 맛을 조금은

흉내 냈던 것 같아 뿌듯했다.


친구 부부에게 나물비빔밥 속에 담긴 한국의 따뜻하고 푸근한 맛은 잘 전달이 됐을까?

3주간의 여정 에 소박하고 정감 있는 고향 집에서의 기억에 남을만한 한 끼로 저장되길 바래본다.

그리움이 번질 때마다 조금씩 꺼내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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