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0대 두 번째 알바일기

by 수다쟁이

나는 아직 50대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열 군데 넣은 이력서 중 한 군데서 연락이 왔을 때

그저 무조건 열심히 하리라 마음먹고 달려간 커피숍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꼈다.

아주 젊은 20대 사장의 얘기에 무조건 "알겠습니다"를 외치며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나이에 대한 부담감은 꽁꽁 감싸두었다.


내가 하는 일은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물 담기와 얼음 담기.

커피 한잔 제대로 내려보지 못하고

며칠째 몇백 잔의 물과 얼음만 담아냈다.

어쩌면 사장은 나를 얼음 담기의 달인을 만들고자

뽑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치도록 바쁜 오피스상가 점심매장에서

일의 분업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하루 네 시간 동안

얼음만 담는 커피숍 알바는 몸도 마음도 지치게 만들어 내 심장의 온도는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다.


같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얼음이나 물의 양을 조절해야 했다. 어떤 이는 물을 조금만 넣어달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얼음을 많이 넣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그때마다 물과 얼음의 양이 조금씩 달라져야 했다.

샷추가도 물의 양을 조금은 적게 해야 한다.

그 작은 차이가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때론 물이 좀 많거나 때론 얼음이 좀 많거나 하는 이유로 핀잔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당연히 들어야 할 잔소리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커피숍 알바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커피머신과 친해져 자연스레 커피를 내리고,

여러 종류의 음료를 만들어 보며 경험을 쌓는 것이었는데

그럴만한 시간은 전혀 주어지지 않고

얼음만 담는 일만 하니 자꾸 기운이 빠져가는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처음 마음먹었던 결심과 각오는

헐거워졌고

나도 이제 전업주부가 아니라 일하는 주부라는 설렘도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서 만원 버스를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의 꿈틀거림도

게으르게 생활하는 아침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뿌듯함도

서서히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미친 듯 얼음만 담아내는 덕분에 어깨와 팔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른쪽 팔만 미친 듯 쓴 까닭에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날도 한 여름의 태양이 지구를 녹여버릴 것 같은

더위와 함께 엄청 바쁠 것 같은 날이었다.

예감처럼 사람들은 밀려오기 시작했다.

미리부터 긴장을 했지만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2분 안에는 나와야 할 음료가 엉키기 시작하고

5분이 지나서야 손님들의 손에 쥐어졌다

그 이후로도 십여분쯤 손님들은 음료를

기존보다는 조금씩 느리게 받아야 했다.

사장의 얼굴은 이미 구겨져 있었고

다섯 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데 사장은 마치 내가 얼음을 느리게 담아

얼음잔이 나오지 않아

일이 꼬인 것처럼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날도 나는 미친 듯 얼음을 담았고,

얼음잔 때문에 음료가 늦게 나온 건 아니었다.

갑자기 주문이 확 밀려들었고

주문의 종류가 너무 다양했고, 이런저런 의사소통의 오류로 한 템포가 꼬이기 시작하자

전반적인 일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 모든 덤터기를 사장은 나한테 미루고 있었다.

사장은 내 얼음 담는 수저를 뺏어 들고

자신이 얼음을 담기 시작했지만

한 번 꼬인 동선은 금방 나아지진 않았다.


바쁜 일이 끝난 후

사장은 나에게 "일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하고

타박을 주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 평생 그렇게 짧은 시간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얼음 담는 대회 나가는 것처럼 얼음을 담은 적은 없었다.


나는 나이 들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나름 일하는 보람을 찾으려고 맡은 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고,

나이 든 나를 써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라도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 일을 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미친 듯 하루 네 시간 몇백 잔의 얼음잔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어쩌겠나?

능숙한 사장의 눈에는 내가 맘에 들지 않는 걸!


하지만 나도 내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카페의 전반적인 업무를 배울 수도 없었고

20대만 있는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 나는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쪽 팔만 계속 얼음 담는 일만 하니

어깨통증은 자꾸 심해져 가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어깨에 물이 차고 염증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일주일이상 사람 구할 시간을 주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다.

늘 있는 일이겠거니 사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얼음잔을 만들고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일을 마무리했다.

길지 않은 두 달간의 여정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면서 나는 마음이 허했다.

참 열심히 해볼까 해서 용기를 내서 들어왔는데

그리고 성심성의껏 일을 했는데

나는 그저 50대의 일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50대라는 나의 위치는 정말 단순한 일만 하는

포지션밖에는 가질 수 없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과 섞이기에는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나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아쉬움도 크게 느껴졌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나의 역량부족과

나이에서 오는 체력의 한계라고 느껴져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에 그리 만만한 일은 없고,

어쩌면 나는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꼰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20대가 보면 이미 많이 늙어 보이는 나이

80대가 보면 한창 젊은 나이인

5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