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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원짜리 아이스라테의 루틴

by 수다쟁이

운동이 나의 생활에 루틴으로 자리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아마 나는 허리디스크가 아니었더라면

'그깟 운동 따위'하고 내 인생에서 없는 목록으로

취급해 버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디스크는 관리하지 않으면 슬그머니

통증이 시작되고 삶의 질은 현격히 떨어진다.

그리고 혼자만의 고통이 시작된다.


더구나 나이를 먹으니 디스크뿐 아니라

여기저기 관절통도 시작됐다.

목도 어깨도 팔에도 마디마디 관절통도..

내 생각에도 대안은 운동밖에는 없었다.

조금씩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남편은

느닷없이 아쿠아로빅을 제안했고

주변시설을 알아보더니 한자리가 비었다며

얼른 등록하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아마도 내가 아프면 밥을 못 얻어먹을 것 같아

그러는 것 같긴 했다.^^)


어르신들만 하는 운동으로 생각했던 아쿠아로빅은

운동량이 상당했다.

50분 동안 팔다리를 저으며 물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나올 때쯤은

모든 기력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진이 빠져 집에 오면 한참을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기도 했다.

나이들어 오는 불안감과 불면증도

운동을 하고 온 날은 훨씬 덜 했고

생활의 활력도 생기는 듯했다.

운동을 끝내고 난 후에는

'역시 운동을 시작하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쿠아로빅은 재미는 없었다.

50분여를 비슷한 동작을 계속 반복해서 팔다리를

내젓는 운동은 너무 단조롭고 지루해서

운동하는 중간중간 언제 끝나나 하고 시간을 계속 보게 되었다.

가기 전에는 항상

"아 오늘은 하루 빠질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다.(실제로 많이 빠지기도 했다.)


남편에게 가끔 이런 이유로 투덜대면

"원래 운동은 같이하는( 배드민턴 테니스 축구 야구 탁구.. ) 종목이 아니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아~~"

하긴 그 말도 맞았다.

헬스 수영 아쿠아 필라테스 요가 이런 운동은

사실 자신과의 싸움이지 그다지 재미를 느끼는 운동은 아닌 것 같았다.


운동을 빠지지 않고 가기 위해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당근이 필요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자 운동을 가는 건

더 힘들어졌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가끔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기도 하고

아이스티를 한잔 타서 넣기도 해서 운동길을 나서기도 했는데 그것이 아쿠아를 꼭 가야만 하는

당근으로 작용하진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운동을 끝내고 저가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라테를 한 잔 시켜 들고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전업주부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건 다 맛있다.

그리고 운동을 마치면 살짝 허기가 지기도 했는데

그때의 시원한 커피 한잔은 그렇게 달콤했다.


운동이 가기 싫은 어느 날

나는 2900원짜리 아이스라테를 떠올렸다.

그러면 주섬주섬 운동 가방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운동을 끝낸 후의 기분을 떠올렸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거야~~

그러니 너에게 아이스라테 한잔을

선물해도 좋아!'라는 메시지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운동뿐 아니라 생활의 작은 루틴을 만들어가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루틴을 실천했을 때 오는

뿌듯함은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빈틈을 채우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나는 아이스라테의 유혹으로 아쿠아로빅을 간다.


(내가 꼭 실천하고 싶은 루틴)

하루에 10분 정도 그날의 생각을 정리하기

밥 먹고 설거지 바로 하기

매일 책 읽기

자기 전에 스마트폰 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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