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그냥 사는 동네만 어슬렁거리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요즘 핫하다는 성수동을 들렀다.
오랜 시간 시내라는 곳을 나가지 않아서인지
낯선 곳의 낯선 풍경은 이상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내가 올 곳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게..
나이 든 아줌마가 그런 곳에 가도 될까?
젊은 이들 사이에서 괜히 눈칫밥이나 먹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얼굴은 늙어도 옷은 최대한 어려 보이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골랐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데 괜한 자격지심에 말이다.
도대체 뭣 때문에 핫할까! 하는 기대감으로
찾아 간 그곳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메인 스트리트는 아닌 것 같았지만
서울숲 높은 건물사이로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상가들이 즐비해 있었다.
70년대와 50년을 뛰어넘은 2025년 사이의
공간은 적당한 향수와 신문물이 그럭저럭 잘
어우러진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걱정했던 것처럼 낯설지가 않았다.
70년대라면 잘 사는 집일 것 같은 옥상이 달린
2층집 구조는 외부는 그대로 남아있고
내부만 개조된 채 젊은 층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와 커피가 어우러져 새로운 곳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 공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후반쯤의
어딘가로 데려다 놓기에 충분했다.
우리 집은 단층으로 된 슬라브 양옥집이었다.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수돗가도 있었다. 뽀삐라는 예쁜 강아지는 똑똑해서 주인 발소리만 나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고.
사루비아 맨드라미 장미 같은 꽃이 피는 작은 꽃밭도 있었다. 사루비아 꽃은 놀다가 심심할 때면 길게 얼굴을 내 민 꽃 술 같은 부분을 뽑아 꿀을 빨아먹으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 여섯일곱 살의 작은 어린아이가 그 안에 있었다.
그 작은 마당에서 나는
스카이콩콩을 타거나 대문 어딘가에 고무줄을
묶어놓고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마당에 작은 돌로 그려놓은 사방치기 그림 속에 돌을 잡고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쓰는 작은 아이였다.
기억 속의 그 집은 화려하거나 멋스러운 집은 아니었지만 나의 유년을 풍요롭게 만든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 유년의 70년대가 모습을 바꾸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양철대문과 작은 마당
세월이 묻은 오래된 계단
계단으로 이어진 2층 베란다
낡은 모습은 세월을 품고 있지만
느긋해 보이는 여백과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베란다에 놓인 테이블에 앉으니
다정한 골목이 눈에 들어오고
왁자지껄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잠시 돌아보고 싶은 그리움의 조각이
그 웃음 속에 머문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마법의 문을 열고 나오니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온 것처럼 반세기의 세월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는 듯했다.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간다.
뒤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도 옛날의 감성을 추구하는 건
단지 유행일까?
아니면 그 안에 있는 살아있는 따뜻한 정서를 느끼고 싶어서일까?
아메리카노와 라테 한잔을 시켜놓고 이층집 베란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이 커피 속에 담긴다.
2025년에 난 잠시 1970년대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