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부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무 살이 넘어 친구들과의 첫 여행지가 부산이었고,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간 태종대의 바다는 오래도록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새벽녘 아무도 없는 태종대의 바닷길을 걸었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도로에 호기롭게 앉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던 추억은 마치
몇 년 전 일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부산을 한 번도 찾지 못한 건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고,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이번 여행도 차를 가져가긴 부담스럽고,
부산만 가기 위해 길을 나서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긴 추석연휴가 부산까지 가고자 하는 마음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시댁인 대구에 이틀을 묵고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30여 년 전 23살의 친구들은
서울역(청량리역인지 )에서 밤기차를 탔다.
아마 무박 기차여행이었던 것 같다. 통일호였는지
새마을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기차는 어느덧 부산역에 도착해 있었다.
낭만적일 것 같았던 밤 기차여행은 사실은 무척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산역에 내려 처음 바라다본 부산은 꽤나 낯설었다.
언덕 위에 집들이 있었고, 마치 집들은 켜켜이 쌓아 올린 시루떡 같았다. 구석구석 골목 위의 집에서 살면 재미가 있을 것도 같았고, 힘들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풍경들이 이상하게 부산이란 도시를
설렘의 도시로 만들었다.
오늘 나는 그런 부산의 모습을 떠올리며
새마을호를 탔다.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서
마치 배낭여행을 하듯..
새마을호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고속열차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창밖풍경이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30년 만의 부산역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예전의 집들은 온데간데없었고, 빌딩숲사이의
부산역과 화려한 상가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가는 인파들 속엔 외국인들도 많았고,
서울 시내 한복판보다 사람들은 더 북적였다.
그것이 왠지 모르게 서운했지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부산은 너무 먼 옛날의 기억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위안을 했다.
오래전 그때처럼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첫 목적지는 송도였다.
바다를 보고 싶은 욕심에 숙소를 송도해수욕장 앞에 잡았다. 버스에 내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지금이 정말 부산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송도의 바다는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마음을 쓰다듬는 파도의 출렁거림은 잔잔했지만 가슴을 뻥 뚫어내고 시원한 바닷바람은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첫날의 송도의 밤바다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두 번째 날의 목적지는 태종대였다.
늦은 아침으로 대구탕을 먹고 버스대신 택시를 탔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사람들로 붐비고
예전에는 없던 다누비열차라는 것이 생겨서
걷지 않고 태종대를 둘러볼 수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걷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야 더 오롯이 태종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역이름으로만 생각했던 태종대는 옛날 29대 태종무열왕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후
이곳의 빼어난 경치에 취해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 하여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뜬금없이 남편은 학창 시절 학원을 땡땡이치고 친구들이랑
태종대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간 기억이 있다고
슬그머니 고백을 했다.
지난날의 추억은 다 철부지 같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진다.
그때는 지금의 전망대에 자살바위라는 게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곳에 전망대가 세워진 것 같다.
멋있어지긴 했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태종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늘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일 것 같다.
늙어가는 남편과 내가 아쉬울 뿐이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다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발걸음에 담으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