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를 뒤로하고 정한 목적지는 국제시장이었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 만원 정도의 거리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했다.
국제시장에 다다르기 전 선착장부근에
부산국제 사진전이란 팻말을 보고 무작정 택시에서 내렸다.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남편과 나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뚜벅이 여행의 자유로움일 것도 같았다.
사진은 그림보다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덜했지만
간혹 재밌는 사진덕에 웃음이 지어진다.
하지만 예술은 늘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얼마나 알아채고 살아갈까?
순간에 의미를 담은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이 스쳤다.
방명록을 남기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뭐라 뭐라 낙서를 했다.
그 아이들의 뒷모습이 어떤 작품보다 더 귀하고
이뻤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한 컷은 사랑스러움이다.
사진전을 둘러보고 나오니 부둣가를 배경으로 유명한 커피숍이 있었다. 어마무시하게 큰 원두 볶는 기계와 창고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선착장과 바다를 바라보는 뷰가 너무 멋졌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커피 맛은 보지 못했다.
원두를 하나 사서 커피 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카페도 이제는 하나의 문화이고, 더 나아가 예술의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더 특별한 맛을 내고, 누가 더 특별한 공간을
만들 것인가? 커피 한잔으로 내가 좀 더 특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산에서 우연히 만난 특별함이었다.
어정쩡한 곳에 내려 특별한 경험을 했지만
국제시장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우리는 지도를 보고 영도대교를 걸어갔다.
무릎이 아픈 남편은 살짝 다리를 절룩였지만
걷는 재미에 빠져 신나게 세찬 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넜다.
차를 탔으면 경험하지 못할 순간이었다.
길을 걸으며 바다를 보고, 바다 냄새를 맡고,
날아갈 듯 한 바람을 느끼고, 사람들의 온기를 느꼈다.
오감으로 부산이란 도시가 말을 걸고 있었다.
남포동 번화가를 지나쳐 국제시장으로 들어오니
옷가게가 즐비했다. 하지만 시장구경보다
우리는 맛집을 찾는 것이 더 급했다.
배에서는 이미 꼬르륵 소리가 났고
두 다리는 이미 지쳐있었다.
부산에 오면 꼭 먹고싶었 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밀면이었다.
국제시장을 지나 깡통시장으로 이어지는 곳에
맛있는 밀면 집을 검색했다.
제발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식사시간이 한참 지난 덕에 식당은 한가했다.
아! 혹시 이 집이 맛집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마음에 가득했지만
친절한 주방장님과 아주머니 덕에 금세
마음이 누구러졌다.
딸은 물밀면을 우리는 비빔 물면을 시켰다.
밀면은 냉면과 국수의 중간 정도의 면에 오이 무절임이 올라가고 특이하게 돼지고기 수육이 얹혀 있었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식감이었다.
아! 이게 밀면이구나! 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국제시장이지만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푸근한 정서를
오랜만에 느꼈다. 거리에 서서 부산어묵도 하나 먹고, 비빔당면도 먹었다.
옷구경을 하고 빵집 앞에 앉아 소금빵을 뜯어먹었다.
시장에 오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다.
다시 걸어서 우리는 맛있다는 피자집과 용두산공원을 지나치며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커피숍에 앉았다.
하루에 이만보쯤 걸으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부산항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에 피곤함을 녹였다.
부산의 바다는 어떤 무언가를 늘 위로한다.
그리고 나는 커피숍에 장식된 스피커를 보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 엄마가 원래 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온 사람인데 너를 낳고 지구에서 머무르고 있는 거야~~ 언젠가 때가 되면 저 우주선을 타고
돌아갈 거야~~"
그때 딸은 나에게 팩폭을 날린다.
"엄마 살쪄서 저 우주선 못 탈 것 같은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