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산여행의 3일 차다. 연휴 끝의 열차표는
늦은 저녁 시간뿐이라 하루를 더 부산에서 보낼 수 있었다. 간밤에 부산해변열차를 알아봤는데 이미 매진이라 좀 아쉬웠다.
무계획적인 나의 잘못이지만 부산의 다른 매력을 만나리라 기대해 본다.
아침은 해운대 맛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남편이 처음 정한 목적지는 송도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감천문화마을이었다.
전쟁통에 피난민들의 마을이었다는 이 마을은
지금은 아기자기하게 예쁜 마을로 변신해 있었다.
층층이 얻혀진 집들과 다채로운 지붕의 색깔, 그리고 곳곳에는 알록달록 예쁜 벽화들 때문에
동화책 속에 그려진 마을 같았다.
골목사이로 난 작은 길에는 고양이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걸며 편안히 쉬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더 정감이 같다.
시간이 고양이의 걸음처럼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파란 대문 집으로 들어가면 언제라도 반겨주는 할머니가 계실 것 같았고, 꼬불꼬불 골목길에선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30년 전에 내가 보았던 부산이랑 비슷해서 잠시나마 옛 기억을 떠올렸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곳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길은 어디론가 이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구 반대편으로 나왔더니
감천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한참을 헤매다가 큰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운대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타기 위해
남편은 앞장서서 걷고 우리는 뒤를 따라 걸었는데
마음이 급한 남편이 엉뚱한 길로 가버리는 바람에 버스를 놓칠 뻔하다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었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려다
"당신 덕에 우리가 부산 곳곳을 돌아보는 것 같아~~^^"
하고 웃으며 칭찬을 했더니
남편은 "헤매야 기억에 남는 거야!" 하고 둘러댔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시간을 곱씹을 때는 쉬운 길을 갔었던 것보단 어려운 길을 가고 헤매었던 게 더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런 시간들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웃음을 주며, 삶의 작은 쉼표가 됐었다.
완벽한 길이란 있지도 않지만 재미도 없다.
해운대 바닷가 근처에 복국 맛집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시원한 복국을 먹으니 다시 힘이 솟았다.
10월의 날씨 답지 않게 햇볕이 쨍쨍했지만
해운대 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이와 나는 음료 한 잔을 들고
해운대 바닷가 앞에 앉았다.
우산을 들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바닷가 옆에서는 서너 살 먹은 아이와 열심히 모래놀이를 하는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이제 다섯 번 남았다"하며 열심히 바닷가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아빠의 힘겨움은 아이의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나도 아이를 키우며 저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 그 아이는 어느덧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있다.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외국인들과
선탠을 하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해운대 바다는 늘 그렇게 생기 넘치고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