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를 마음에 품고 도심의 거센 바람을 헤치며 우리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찻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를 탔다.
부산에 온 지 이틀 만에 마치 부산 시민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 언덕 위에 내리니 작은 정자가 있었고, 나무그늘 아래에 있는 정자는 시골 어느 마을의 원두막처럼 편안해 눕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하늘 중에 제일 높은 하늘이란 뜻을 가진 찻집인데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이름과 같이 하늘 위에 얹힌 집처럼 느껴졌다.
고즈넉한 찻집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 언덕 위에 자리 잡아 우리를 한 폭의 수채화 속으로 안내했다
국화차, 단호박빙수, 오미자차를 시키고 창가에 앉으니 마치 조선 시대 어느 양반집에 초대받은 것 같아 더 정숙해졌지만
남편의 장난기 때문에 우리는 양반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사진을 찍고 경치를 즐기다
남편은 다음 여정을 계획했다.
무작정 따라가니
편하긴 했지만 살짝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더 길치이기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음 여정은 해동 용궁사였다.
한참을 걸어내려 가다 버스정류장에 다다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에게 버스노선을 물었다.
어딘지 잘 모르는 곳이라 대답을 못 드렸는데
우리에게 어디 가냐고를 되묻고는
길 건너 타라고 알려주셨다.
남편은 여기서 타는 게 맞다고 얘기하고는
버스에 타자마자 잘못 탄 거 같다고 자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뒤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께 물으니 용궁사 가는 게 맞다고 안심시켜 주셔 다행이었지만
남편덕에 또 하나의 소설을 쓸 뻔했다.
버스를 타고 20분여를 가니 용궁사 앞에서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외국인들도 사찰을 많이 찾네? 하고 의구심이 들었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안을 끼고 절벽 위에 있는 용궁사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바다와 사찰의 모습이
그림같이 느껴졌다.
용궁사란 이름이 붙여진 유래를 찾아보니 1974년에 정암스님의 꿈에 용을 타고 승천하는 관음보살을 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왕이 사는 신비로운 바다 궁궐이라는 뜻에서
용궁사이다.
왠지 이름처럼 용왕이 살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절이었다. 불교 신자가 아닌데도 말이다.
진심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경치에 반해서 소원을 비는 걸 깜박 잊어버렸다.
하지만 부처님은 아마도 내 마음을 아시리라..^^
해가지기 전 우리는 용궁사를 한참 걸어 나와
버스를 탔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고 부산역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 목적지는 부산역 차이나타운의 만두집이다.
한참을 다시 걸어 나와 빨간 버스에 오르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유럽여행도 아닌데
거의 하루에 2만보를 걸은 듯했다.
부산을 한 바퀴 도는 것 같은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우리가 처음 도착한 부산역으로 안내했다.
남편은 유명하다는 피자를 꼭 먹고 싶어 했지만
이미 웨이팅은 마감이었고
유명하다는 만두집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우리는 5가지 정도의 만두를 맛볼 수 있었다.
만두는 고기의 맛과 육즙의 맛이 풍부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감탄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남편은 못내 아쉬워하며 짜장면을 더 먹고 싶어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배도 부르고 시간도 부족했다.
어쩌면 남편의 허기는 단순한 배고픔이라기보다는
2박 3일의 부산여행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이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다시 올 수 있지만
돌아가야 하는 여행의 끝은 늘 뭔가 아쉬움을 남긴다.
아직 먹어볼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하지만 2박 3일의 뚜벅이 부산여행은 끝났다.
오랜만에 20대처럼 배낭을 메고 떠난 여행에서
몸으로 다가온 부산의 바람과 부산의 거리는
낯설지만 따뜻하고 정겨웠다.
부산의 이름 모를 계단도,
전시장에서의 아이들도,
밀면가게 아저씨도,
카페에서 맛있는 원두를 추천해 준 직원도,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던 아기아빠도,
해운대 바다에 뛰어들었던 아가씨들도,
길가에 누워있던 고양이도,
버스정류장의 아주머니도,
원두막 같은 정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