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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Dec 14. 2023

남편을 위한 한 그릇 저녁(1)

-두부 달걀 샐러드-

남편이 몇 개월의 휴직기간을 마치고 복직했다.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그 하루하루가 무의미한 삶보다는 의미 있는 삶으로 남길 바란다.

갑자기 녹내장 환자가 되어버린 남편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건강한 밥상을 마련하는 것 밖에는 없다.


오후 5시 남편은 회사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운동을 하고 들어오면 9시쯤 된다.

거하게 저녁을 다시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이제는 라면 같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기에는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환자인 것이다.


나는 한 그릇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랠 남편의 식사를 생각하게 됐다. 몸건강은 눈건강이랑도

직결되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의 남편의 건강은

내 손에 달린 것 같아 부담감이 크다.

그 부담감을 하루의 보람이나 행복으로 남기고자

한다. 게으름이 많은 내가 얼마나 남편을 행복하게 할지는 모르겠다.

그저 오늘의 노력이 훗날 뿌듯함으로 다가오길 바래본다.



두 달 전쯤 남편이 딸아이의 안경을 맞추는데 따라갔다.

남편은 자기도 요즘 노안인지 안경이 흐릿하다며 시력검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나는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 그런가 보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고

남편의 시력측정을 기다렸다.

얼마 후  안경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게 교정시력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말을 했다.

덧붙여 혹시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안과를 꼭 한번 방문해 보라고 조언을 했다.

남편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런가 보다 하고

딸의 안경만 맞추고 나오게 됐다.


주말이 지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말이 생각나

안과에 예약을 하고 가기 귀찮다는 남편을 부추겨

안과로 향했다.

기본검사 중 하나인 안압측정과 안저검사를 하고

선생님을 만났는데 선생님은 느닷없이 녹내장일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가슴이 철렁 이름만 들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병명에 남편과 나는 멍해졌다. 예전에 건강검진에서 한번 재검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가까운 안과를 갔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정밀검사해 보실래요? 하고 물었단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조로..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편은 탄식을 했다.


이런저런 검사 후 다시 의사 선생님을 보았을 때

선생님은 간단히 지금 현재상태를 설명했다.

좀 진행이 됐네요.. 중기입니다.

"일단 약을 넣어보고 1 2년 추이를 지켜봐야 알겠습니다. 혹시 검진에서 찍었던 사진이 있으시면 가져와주세요.. 그럼 추이를 판단하기 쉽습니다. 일단 안압을 낮추는 게 목표입니다. 약 넣어보시고 한 달 후에 뵙죠.."


남편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딱히 무슨 말을 물어봐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병원문을 나서며 나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 많이 자책하고 상심이 클까 봐 걱정스러웠다.

금방 나빠지는 병은 아니지만 10 년 20년 후에 내가 혹시 못 보게 된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좌절감이 될까 봐서..

어쩌면 내 마음도 같이 그랬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 우리 너무 먼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잘 관리하면 많이 안 나빠질 수 있으니

상심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20년 후의 일을 걱정하느라 하루하루를

힘들게 사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잖아~~

힘내! 내가 옆에서 잘 도와주고 챙겨줄게^^"


나는 씩씩하게 남편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녹내장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떤 병이든 케이스바이케이스이다.

카페도가입하고, 유튜브로 의사 선생님의 강의도 들었다. 결론은 이거였다.


좋지 않은 건 하지 않기(술 담배)

좋은 건 꾸준히 하기(유산소운동)

안약 꾸준히 넣기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


남편에게 힘든 건 안약이었다.

그냥 넣으면 되는 줄 알았던 안약은 부작용이 심했다.

졸음이 오거나 무기력증 우울감 그리고 몸을 많이 피곤하게 했다.  한 방울의 안약이 저런 부작용이 있으리라곤 상상을 못 했다.

생각지 못했던 후유증이 삶을 갑자기 노인의 삶으로

바꾸어놓았다.

안약 넣고 자고 밥 먹고 또 자고 운동 가고 그리곤

사이사이 멍해졌다.


일주일이 지나 선생님께 부작용을 얘기했다.

선생님은 적응과정일 수 있으니 좀 더 넣어보고

계속 그러면 약을 바꾸는 수밖에는 없다고 하셨다.


선생님 말처럼 약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몸에 적응을 하긴 했다. 그래도 남편은 뭔지 모르게 처지는 기분을 없애고 싶다고

약을 바꾸었다.

바꾼 약은 천식이나 기침이 있는 환자는 쓰지 못하는 약이다. 기침을 유발할 수 있고

작열감이 심해 눈이 피곤하다고 했다.

지금 간헐적으로 나오는 기침이 감기후유증인지

안약부작용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더 늦기 전에 병을 발견한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남편이 앞으로 감수해야 될

일이 안타깝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은 일들로

지금 걱정했던 일들이 편안해질까?

분명한 건 매일매일을 녹내장이라는 단어에 묻혀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남편에게 어떤 한 그릇 음식을 선사할까

고민 중이다.


처음에는 두부 달걀만 주려고 함^^


딸아이와 저녁으로 먹은 김밥도 추가함^^
소스는 유자청에다 매실청을 섞어 희석하고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깨를 갈아 넣었다.
그럭저럭 이상하고 괜찮은 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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