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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그녀의 탱고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by 수다쟁이

37도를 오르내리는, 숨이 콱콱 막히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날씨다.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켜다 지구가 온통 폭발해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잠시 머릿속에 머물다

멍한 머리는 다시 생각을 놓치고 핸드폰을 들었다.


때마침 카톡 알람이 울리고,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는 느닷없이한 권을 소개했다.

더위를 싹 날려버릴 책이라고..

"정말?"

그러다 속으로는 잠깐 이런 생각이 스쳤다.

글쎄 과연 그런 책이 있을까?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내심 의심병이 도졌다.


근데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식상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

"오~~ 제목 쥑이네~~^^"

아저씨 필의 뉘앙스로 카톡창에

답장을 하고 바로 구매를 해버렸다.


뜨거움에 지친 머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와 잠식해 버렸으면 하는 바람과

때로는 쓸데없이 작동하는 직관력을

재미 삼아 실험해 보고픈 충동이 일었다.


책은 그날 저녁 도착했고,

늦은 저녁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에세이는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했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소설도 아닌데

마음은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있는 것처럼 오르락내리락 출렁거렸다.

그녀의 이야기는 담담한 듯 슬프고.

웃기다 짠하고,

마음 한구석을 자디잘게 찢어놓고 있었다.

내 일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고,

그녀 주변에 포장지처럼 둘러싸인 가식은 그녀의 말들로 과감하게 벗겨져 쓰레기통에 쳐 박혔다.


땡볕 더위에 달궈진 머리는

갑자기 시원한 냉기가 서리는 듯했고

어느새 나는 그녀가 놓은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천형 같은 아픔일까?

감히 상상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

간혹 마주치는 시각장애인들을 볼 때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적당히 외면했다.

잠시 안쓰럽다는 마음을 흘리면서..

어쩌면 내 마음의 이기심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 책 속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 작가들을 볼 때

비아냥거리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정작 그들은 어떤 고통도 겪어보지 못했으면서

세상의 고통을 다 경험해 본 것처럼

써 내려간 글들은 다분히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한낱 예술가라는 이름을 건 사람들의

잘난 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힘들지 않은데 힘들다고 꾀병을 부리고

아프지 않은 데 아프다고 엄살을 떤다.


멈추지 않는 트레드밀을 타는 죄수들의

고통을

끊임없이 돌아가는 트레드 밀을 타보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모른 척 나와 상관없는 척하는 것이

어설픈 동정심으로 아는 척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럴듯한 포장지에 둘러싸인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 더 많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동정과 따뜻한 배려의 경계는 참 어렵다.

미스터 손의 진심 어린 배려가 마음에 오래 남는

까닭이다.


그녀는 눈이 먼 게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진짜 불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멈추지 못하는 트레드 밀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그녀의 아픔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불행 속에서도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고향 같은 사람들의 힘일까?


그녀의 이야기 중 나를 가장 웃기고 울렸던 건

그녀의 먼 친척인 당숙오빠였다.

나에게도 그런 오빠가 있어서

어쩌면 더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16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나의 외사촌오빠는 당숙오빠처럼 백혈병을 앓았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힘겹게 병마를 이겨낸 오빠는 잠시 요양생활을 거쳐 일을 찾으려 했지만 마땅한 일이 없었을 것이다.

오빠는 어찌어찌 이런저런 일을 하며

어렵게 두 명을 자식을 키워냈다.


어릴 적 오빠는 우리와 함께 지냈다.

이모인 엄마가 사촌오빠를 중학교 때부터

데려와 같이 살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새벽밥을 해주며 학교를 보냈다고 한다.

이모네 형편보다는 우리 집 형편이 조금은 나았던 모양이다.

나는 어린 날 털모자를 쓰고 그 오빠의 졸업식에

참석해 찍은 사진을 보았다.

따로 독립해 근처에 살고 있었을 때는

간간히 반찬 심부름을 했던 기억도 있다.

오빠는 성실했고 친오빠처럼 늘 다정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를 친엄마처럼 따랐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의식 없이 병마와 싸우고 있었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빠는 매 해 두 번의 명절날

우리 집에 방문해서 말없이 나를 위로했다.

물끄러미 엄마를 쳐다보고

나더러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며..

그리고 어느 날은 말라가는 나를 위한 보약 한 첩을

지어 보내기도 했다.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찾아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명절이면 외사촌 오빠를 기다렸다.

그 오빠가 집에 다녀가야 명절인 것 같았다.

다급한 상황이 닥치거나 몹시 마음이 허해지면

나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감정을 쏟아냈다.

그러고 나면 휘몰아치던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70이 넘은 오빠는 지금도 가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가끔 이모인 엄마가 그립다고 한다.

"이모가 나를 8할을 키웠는데 나는 1할도 못 갚았어"

오빠의 말속에 그리움과 회한이 어린다.

나는 알 것 같다. 오빠가 지금 많이 외롭다는 것을

그래서 옛사람이 그립다는 것을..

나는 오빠에게 한 층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오빠! 우리 만나서 밥 먹자~~"


그녀의 당숙오빠에게서 나는 나의 사촌오빠를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에 사촌 오빠는 사진 속의

한 컷처럼 찰나의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정은

내 안의 양분이 되어

아직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게 청홍의 사각팬티를

나눠 입고 권투시합을 흉내 내어 한바탕 웃음거리를 선사한다.

철부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아는 척하기 싫을 만큼 지지리 궁상인 시절에도 그녀에게 꾸깃한 돈을 쥐어주며

"한방이면 끝나"라는 말로 용기를 주던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여태껏 살아갈 수 있는

끈질긴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오빠는 그녀에겐 영웅이었지만

큰 슬픔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슬픔은 분명 다른 옷을 갈아입고

그녀를 단단하게 할 것이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것 같은 그녀에게 더 두렵게 찾아온 것은 감정에 대한 메마름이었다.


나이를 세는 숫자가 늘어날 적마다 나는 무언가 하나씩을 잃어버려야 했다. 시력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연인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하루라는 시간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이 그냥 흘러갔다.

내 운명이 빙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홀로 떠돌다 결국 녹아 없어져버리는 빙산처럼 나의 삶도 시간을 부유하다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탱고를 추는 시간' 중에서)


그녀의 삶이 시간을 잃어갈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녀는 탱고를 만났다.

나의 존재가 발현되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다는

자괴감. 나를 인정해 주고 알아봐 주는 이가 없다는 서글픔. 그녀가 견뎌내야 하는 무게였다.


어렴풋이 나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존재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였다.

누가 나와 함께 웃어주고

누가 나와 함께 밥을 먹을 것인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직업도 엄마도 친구도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

혼자라는 외로움의 끝은 결국 좌절로 이어지고

끝 다른 공허감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쇼핑을 했고, 멋진 옷을 사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아무도 알아봐 주는 이가 없었다.

"나 옷 샀어"하고 자랑할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내 전화를 기쁘게 받아 줄 이도 없었다.

감정을 구걸하는 일은 참 치사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이 시체가 될 때까지 난 혼자만의 싸움을 해야 했다.


탱고를 추며 그녀는 전율을 느낀다.

멋진 탱고복을 입은 그녀는 한없이 자유롭고

장애는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에 선 그녀는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관객은 그녀의 춤사위를 따라간다.

그녀의 발끝이 지나가는 자리엔

늘 커다란 울림과 여운이 남아 심장을 두드린다.


꽃이 되어 사람들의 위로가 되고 싶다던 그녀는

어느새 탐스러운 빨간 작약꽃이 되어

피어난다.

그리고 어느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메스티소의 슬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새로운 운명을 쓰고 있다.

그녀가 지닌 운명의 꽃말은 희망이다.




그녀에게서 나는 사람다운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가 내 폐부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어느새 한 줄기 눈물이 흐르고, 상처에는

누런 딱지가 앉는다.

그녀의 비극은 이젠 더 이상 비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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