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모양의 커피우유와의 인연은
학창 시절 잠깐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던 ○○ 은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사무실에
몇몇 대학생은 직원들의 업무적인 심부름이나 쉬운 일을 돕는 목적으로 잠시 고용된 적이 있다.
(아마도 일자리 창출 비슷한 목적의 아르바이트이지 않았나 싶다.)
그 사무실에는 일을 엄청 열심히 하는
커리어우먼들이 상당히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중 한 분의 책상엔 늘 아침이면 삼각형 모양의
커피우유 한 개가 놓여있었다.
아마 바쁜 아침에 식사 대신 커피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분이 아침을 어찌 먹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 삼각형 모양의 커피우유는
계속 눈에 띄었다. 아마도 먹고 싶었던 욕구와
그 특이했던 삼각모양의 커피우유가 내 안에 확
꽂혔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는 종종 그 커피 우유를 사 먹게 되었다.
그리고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힘이 없고 지치는 날 그 삼각모양의 커피우유를 사게 된다.
(없어지지 않고 아직도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고마움을 느끼면서..)
근데 왜일까?
종이팩에 담긴 커피우유엔 손이 가지 않는데
그 커피우유엔 자꾸 손이 가는 건..?
그 시절 뭔가 대단해 보였던 커리어우먼이 마셨던 커피라서?
아니면 종이팩 커피우유보다 엄청나게 맛이 있어서?
삼각형 모양의 딱딱한 비닐팩모양에 담긴 커피우유는 사실 밖에서는 마시기도 힘들고
빨대를 꽂기도 상당히 불편한 데 말이다.
뾰족하게 생긴 윗 꼭지를 깨끗한 가위로 잘라내고
거기에 작은 빨대를 꽂고
마시는 커피는 그냥 그것만의 감성과 매력을 느끼게 한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자기만의 치장을 하고, 누가 말을 걸어도 미소만 지으며 대꾸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도도하게 말이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 커피우유에서만 느껴지는
묘한 맛을 좋아했다.
자칫 없어 보일 수 있는 비닐팩 속의 삼각형은
특별한 맛이 나게 했고
마시고 나면 부족했던 에너지가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뭔가를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기는 기분도 들었다.
알다가도 모를 삼각 커피우유가..
그리고 나에겐 그 커피우유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의 음료가 또 있다.
그건 키가 작고 가운데가 뚱뚱한 모양의
바나나 우유다.
바나나가 비싸던 시절 우리는 바나나 우유로 바나나 맛을 간접적으로 맛보기도 했지만
단순히 바나나 맛이 나서 그 우유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그 귀엽고 뚱뚱한 병에 담긴 바나나 우유라야
진정한 바나나 우유 같았다.
내가 바나나우유를 처음 만난 건
주말행사처럼 방문한 목욕탕에서였다.
목욕탕에 놓인 작은 냉장고에 흰 우유와 함께 놓인
바나나 우유는 그렇게 먹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뜨거운 온탕 속에 있다가 한바탕 엄마에게 때수건으로 때 밀림을 마치고 난 후에
느끼는 해방감과 함께 주어지는 바나나 우유는
바나나 한 다발을 가슴에 안은 듯 행복감을 주었다.
배가 나온 듯 가운데가 볼록한 바나나 우유통은
바나나 우유는 꼭 여기 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듯했고
종이 팩에 담긴 바나나 우유는 가짜 바나나 우유처럼 아예 손길이 가지 않았다.
고사리 같은 손 두 개가 모여야 꽉 쥘 수 있는
바나나 우유는
내 어린 날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선물한
소중한 존재였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장미는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한 향기가 난다라고 말했지만
빨강 머리 앤은 생각이 달랐다.
만약 장미의 이름이 엉겅퀴나 앉은부채라면 별로 근사하지 않겠죠?라고 말한다.
나는 앤의 생각에 동의한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맛이라도
그것이 어떻게 불리고,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맛과 향기는 달라진다고 느낀다.
장미는 장미라는 이름을 가져야 더 고혹적이고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아침
난 그 삼각형 모양의 커피우유가 간절히 생각났다.
그리고 가운데가 볼록한 바나나 우유도
몹시 그리웠다.
어쩌면 난 그 커피 우유와 그 바나나 우유가 가진
맛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삼각형 모양의 커피와
배불둑이 모양의 바나나우유의
아이덴티티를 마시고 싶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