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에는 한여름의 찌는 더위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낭만이 있는 것 같아 좋았는데 해가 갈수록 더위라는 것이 삶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자리 잡는 것 같아 두렵다.
그렇게 꼼짝도 하기 싫은 날씨의 한 중간쯤
남편의 생일이 있다. 친구들은 '미역국 끓이고
밖에서 사 먹어~더운데 집에서 뭘 해?
"누가 요즘 집에서 생일상 차리는 사람 없어~"
하고 나의 입장에서 거들지만
나는 남편 생일은 간단하게라도 집에서 차려야 한다는 의무감 또는 사명감 같은 게 있다. (그렇다고 뭘 엄청나게 잘 차리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남편과의 만남은 늦은 나이에 이어졌고,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남편의 집안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안의 제사가 명절까지 9번이고,
어머님이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했다.
아버님은 남편이 10살쯤 되던 해 돌아가셔
큰 기억이 없고, 대신 할머님이 손자들을
많이 봐주셨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 넘겼다.
그리고 지금 이런 얘기를 왜 할까? 하고
속으로 의아했다.
그때는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결혼을 하니 얘기는 달라졌다.
제사를 중요시하시는 시어머님의 뜻에 따라
첫 해는 모든 제사를
그 이후에도 일 년에 다섯 번은 지방에 있는 제사에 참석해야 했다.
그런데 희한한 건 어머님은 아들들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하셨다.
집안대소사가 많은 것도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 같고,
아마 형편이 힘든 이유로 자식들의 생일은 그냥저냥 넘기셨던 것 같기도 했다.
집안의 사정은 어쩔 수 없었지만
결혼 후 남편의 생일즈음
나는 남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됐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남편은 항상 기가 죽어있었다고 했다.
어려웠던 형편은 남편을 더욱 그렇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남편이 가끔씩 어린 날을 얘기할 때면
목소리와 표정에는
뭔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가장 축하받아야 할 생일날에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남편의 어린 날의 초상은
지루한 장마철의 그 어디쯤인 듯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결혼 후에는
생일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차려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잘하건 못하건 집에서 차리는 생일은
그래도 남편만을 생각하는 정성이 들어가고,
그런 작은 마음이 남편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남편의 생일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무슨 음식을 할까?
사실 매번 뻔하지만 뻔함 속에 뭔가
특별함을 찾고 싶었다.
생일에는 무조건 미역국 불고기와 잡채는 있어야 하고, 그 외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홍어회와 전복 그리고 나물류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한두 가지는 음식 잘하는 분들
음식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나랑 딸아이는 편지를 쓰고
이벤트 풍선을 준비했다.
그리고 검버섯이 생기는 남편을 위해
미백 화장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약간의 현금과 함께~~^^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은 들뜨고 기분 좋은 일이었고,
덕분에 한층 젊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아마도 남편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생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남편의 어린 날의 마음에도
반창고를 하나 붙이는 날이 되기를 바래본다.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빠로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