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로부터의 탈출-
여행의 시작은 헤맴이다.
너무 잘 짜여진 여행은
완벽할지는 몰라도 큰 재미를 주진 않는다.
일본에 도착해서 첫 헤맴은 라피트
개찰구를 찾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한참을 헤매다 직원에게도 물어보고 이리저리 헤매다 개찰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은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준다.
한 시간여의 텀이 생긴 우리는 편의점에 들렀다.
건물 속 벤치에 젤리와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으니
문득 이 공간이 나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낯선 곳에서 오는 짜릿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진
잠시 잠깐의 시간에 얽매였던 일상의 끈을 놓아버린다. 걱정과 불안이 없어진 삶은 행복하다.
짜릿함을 좀 더 증폭시키려고 어릴 적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렸던 장난감과 비슷한 일본의 가챠를 돌려봤다.
만원을 탕진했지만 미니언즈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러워 만원 이상의 행복이 느껴진다.
행복은 어쩌면 단순하고 가볍다. 달콤한 젤리가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처럼..
김영하작가는 깨끗하게 리셋되어 있는
호텔방의 침구에서 여행의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일상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보이지 않는 적과
대적할 에너지를 얻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말하고 있다.
어떤 이는 커피숍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들 사이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 때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여행의 자유와
해방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여행은 어쩌면 나로부터의 탈출인 것이다.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들 속에서
내가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잠시 살아보는 것.
그것이 잠깐은 어색하고 때로는 뻘쭘해도
마음속에 차오르는 뿌듯함이 있다.
우리는 라피트라는 빠른 열차를 타고
난카이난바역에 도착했다.
백화점을 끼고 있는 광장. 건물 사이사이로 보이는
낯익은 간판들. 처음이 아닌데 처음인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세월이 삼켜버린 기억은 무엇을 보아도 새롭고 신선했다.
유명하다는 만두집을 찾아 만두 두팩을 샀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치즈케이크 집을 찾아 치즈 케이크도 하나 샀다.
맛집을 다 사들인 듯 뿌듯함을 안고 광장
한복판에 앉아 만두를 입에 넣었다.
비둘기들이 한 두 마리 날아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광장은 이방인들의 자유로움으로 시끌벅적하다.
그 한가운데 또다른 나의 인기척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