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7)

-길은 새로운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다-

by 수다쟁이

여행의 시작은 길이다.


어쩌다 보니 짧은 여행을 시리즈처럼 지루하게 쭉 늘어놓게 됐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나를 붙잡는다.

어쩌면 나는 여행의 끝에서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내가 여행 중에 마음속에 남는 한 가지는 길에 대한 마음이다.

나는 어떤 곳을 가든 그곳의 길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새로운 길도 좋고, 한적한 길도 좋고, 도시적인 길도 좋고, 낭만적인 길도 좋고, 삭막한 느낌의 길도 좋다.

낯선 길은 더더욱 좋다.


음식이나 체험은 순간이라 그때의 기억을 다시

반추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길을 걸을 때의 그 시간이나 느낌은

마음속 작은 방에 오래도록 머무르기 때문이다.

지금 알아챈 사실이지만 나는 길을 걷기 위해

길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택시에서)


이번여행에서의 첫 길은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였다. 6시도 안 된 이른 새벽 급히 운전을 하시는 기사님 덕에 1시간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쿵딱쿵딱 뛰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나보니 그 택시기사 분이 왜 그리 운전을 급히

하셨는지는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새벽 5시 반이 지나자 서울 도로는 이미 차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도로에서 30분 40분은

갇히게 될 수도 있었다.


'아! 이렇게 새벽부터 움직이시는 분들이 많구나!'

여행이 아니었더라면 따뜻한 이불속에서 한창

깊은 잠 속에 빠져들어 있을 시간..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하긴 얼마 전 새벽출근을 하는 오빠는 나에게

"첫 지하철이 사람이 제일 많아"라고 말을

했었다.

"아! 정말?"


그냥 그 택시 위의 길에서 나는 좀 부끄러웠다.


(광장에서)


이번 여행의 길은 광장에서 시작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곳, 들뜸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곳, 설레었지만 쓸쓸하기도 했다.

광장에서 느끼는 공허한 기운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왜 그랬을까?


이런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다는 걸

아는 나이라서 그런 것일까?

쓸쓸함을 감추려고 따뜻한 만두를

먹으며 웃음 지었다.


난카이난바역 광장


(역사에서)


일본의 지하철 역은 주로 지상에 있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역사에 서 있을 때 나는 항상

어떤 당면한 목적을 가지고 절실한 마음으로

서 있다. 평상시와는 조금은 다른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열차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리고 긴장도 되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열차의 역사에 서면 나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에 선 것 같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어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마음이 항상 부풀어 오른다.

다시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삶을 리셋하는 것처럼

일본의 지하철 역에서 나는 잠시

삶의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지금 나는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걸까?


일본의 어느 역사앞에서


(길 위에서)


평상시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릿속의 잡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니 걷다 보면 오히려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엉켰던 마음이 야들야들 풀어져

다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마음으로 변한다.


고야산에서 나는 고즈넉한 길을 만났다.

밤이면 고요 속에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할 곳 같은..

세상의 이기심과 번뇌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은 평온함의 길

그 길 위에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고야산의 길

오늘 나는 낯선 길을 걸었고

길 위에서 나를 만났다.

그리고 나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여행은 어쩌면

마주치는 길 위에서

숨겨진 나와 조우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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