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모순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시대를 지나쳐버린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빛바랜 사진처럼 낡은 느낌을 주어서
30년이 지난 후에 왜 다시 그 시절의 이야기가 회자되는지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
쌍둥이 자매의 엇갈린 삶에 대한 모순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해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이모는 가슴이 아프지만 '우울증이었네'라고 이해되었다.
그 시절에는 잘 몰랐을 병이었지만
지금의 현대인에게는 보균자처럼 내재된 병이라서
많이 놀랍지는 않았다.
주인공 진진이는 당연히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능력이 있고 무던한 나영규를
선택할 거 같았고,
이모 같은 인생을 한 번 걸어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은 짐작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런 상황에 어느 누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 느껴지는 아픔들은 소리 없이
가슴을 짓눌렀다.
우리의 인생에는 감히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있으며, 삶의 불행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모순>은 어쩌면 시대를 초월해서
당신은 왜 살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친한 친구의 카톡에 부고소식을 접했다.
아버지의 부고였다. 연세는 80세.
많은 연세지만 그래도 아직은 젊은 나이라 생각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연락을 하던 친구는
아버지가 크게 아프시단 말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 살아서
아버지 엄마 동생까지 다 아는 사이였고,
가끔 아버지 성격이 울뚝불뚝 화를
내시는 성격이라 엄마가 힘들어하신다는
말은 종종 들었었다.
심장마비일 거라 짐작하고 울컥하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친구는 오열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설명하지 못했다.
남동생의 슬픈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가슴에
박혀 눈물이 났다.
위로하는 말들이 무색하게 느껴져
정작 아무 위로도 전하지 못한 채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친구 아버지의 일생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년간을 건설 노동자로
일을 하셨다. 그 시절에는 그 일이 배움이 부족했던 아버지가 돈을 벌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공장을 나가시며 일을 하시고
아이 둘을 키우느라 애를 쓰며 힘든 시집살이를 견디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재는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을 외로움이란 단어로 물들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끔 친구는 혼자 계단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 쓸쓸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는 어린 날의 상처가 멍처럼 번져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올 뿐이다.
부모님들의 노력으로 친구네는 헌 집을 사서
새로 집을 지었고, 중년이 되었을 때는 생활비정도의 월세를 받고 사는 중산층의
가정이 되었다.
친구와 남동생은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을 했고,
손녀들은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친구는 부모님들이 해주시는
김장을 먹으며 누구보다 행복하고 다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아버지와 엄마는 다투기도 한다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도 많이 느끼신다고 했다.
어머님의 성격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것에 반해
아버님은 성격은 외골수였고, 술도 잘 못하시고
친구도 거의 없으시다고 했다.
엄마가 운동을 같이 하자고 해도 싫어하시고 집에서 티브이를 보시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했다.
자식들에게도 평생 살갑게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가끔 여행을 모시고 가면 아주 좋아하신다고 했다.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우리네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아버지는 그런대로의 노년을 보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너무 무료하셨을 것도 같다.
성격 탓에 친구나 취미도 없으시고,
평생을 힘든 일을 하며 자식 뒷바라지로만 사셨을 텐데 60이 넘은 나이에는 이미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살갑지 못한 성격은 울뚝불뚝 화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을 것이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드셨을 것이다.
잘 성장한 자식과 손자들을 보며 뿌듯하셨겠지만
자신의 자리는 이미 너무 지루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한 삶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지만 누군가에겐 너무 지루해서 벗어나고 싶은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갑작스레 <모순>의 주인공 진진이 이모의 삶이 떠올랐다. 객관적으로 이모의 삶은 완벽했지만 그 시간들이 이모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왜 아픈 선택을 했는지는 이모만이 알 뿐이었다.
누가 보기에도 아무런 이유 없는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너무 원통하고, 가슴 아프고,
심지어는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죽음보다 더 힘든 건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몫이다.
그것은 짐작할 수도
감히 위로할 수도 없다.
그날밤 나는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다
친구에게 전하지 못하는 편지를 썼다.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J아!
그리고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아버지는 누구보다 행복하셨을 거야..
너와 동생 k가 아주 잘 살고 있으니..
단지 지금은 좀 무료해서
조금은 지루해서
조금 빨리 편해지고 싶으셨을 거야
인생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건지도 모르니..
이유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우리도 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