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한동안 착잡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했다.
엄마의 자리는 어떤 자리여야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거미줄처럼 줄을 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 한편에 고여있는 고민이기도 하고
늘 후회와 반성을 하게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그 자리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하지 못한 숙제처럼, 구멍 난 양말처럼
가슴 한편이 늘 허하다.
어쩌면 우리는 힘들게 부여되는 그 자리를 권위라는 이름으로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관망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는 건 아닌가?
물을 많이 주면 나무는 썩어버리고
물을 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서 죽는다.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물은 얼마만큼일까?
마리는 예쁘지만 영악하기도 하고 속물스런 아가씨이다.
자신이 주목받는 걸 즐기며 기쁨을 만끽하는 아가씨가 20살에 애엄마가 됐으니 아기가 보기 싫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무슨 죄일까?
이유 없이 외면당해야 했던 디안은 엄마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어떤 글에서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는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마리는 디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외면한다.
디안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마리는
막내 여동생에겐 집착적인 사랑을 준다.
이해할 수 없었던 디안은 차라리 엄마를 외면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
디안의 마음은 상처로 얼룩지고 디안은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준 의사의 질문은 디안을 살고 싶게 했다.
그리고 디안의 삶의 목표는 의사가 되는 것으로 정해진다.
디안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데 골몰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으로 삶의 목표를 세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은 버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노력을
고작 11살짜리 아이는 해내고 있었다.
의사가 된 디안은 존경할만한 인물인 올리비아와 만난다. 그녀를 도와 논문을 쓰고, 그녀를 교수의 자리에 오르도록 돕는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디안의 노력은 외면하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달려가는 속물적인 인간이다.
올리비아는 유능한 교수였지만 엄마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똑똑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딸인 마리엘을 경멸한다.
엄마인 올리비아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위치와 명예뿐이다.
디안은 마리엘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겪는 마리엘이 안쓰러워 손을 내밀고 보듬는다.
경멸을 받으며 자란 마리엘은 엄마를 얼마나
증오했을까? 아이가 받았을 상처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런 증오는 마리엘을 엄마를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었다.
마리엘을 괴물로 만든 건 바로 엄마인 것이다.
갈 곳이 없는 마리엘은 디안을 찾았고
디안은 너의 집이 바로 여기라고 얘기해 준다.
마리엘을 가슴으로 사랑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디안이었다.
책을 읽으며 참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에게 유년의 기억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그 기억으로 평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아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일까? 곱씹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집착하는 건 아닌지..
아이가 못 미더워 자율성을 해치는 건 아닌지..
한 발자국 뒤에서 아이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믿고 신뢰하고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책이 전하는 작은 메시지였다.
<너의 심장을 쳐라, 천재성이 거기 있으니>(p102)
라는 시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