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건 일상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굳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바리스타는 넘쳐나고 커피숍도 한 집 건너 생기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커피는 원두에 따라 내리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고, 커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종류를 가리지도 않지만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셨을 때의 뿌듯함을 스스로도 한 번 느껴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은 작용했다. 전업 주부에서 일도 하는 주부로 변신하면 나의 자존감의 온도도 조금은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혼자만 살짝 품기도 했다.
주부인 나는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 수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수업료의 반만 내면 내가 배우고자 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80프로 이상의 출석률을 보여야 그 과정을 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건 무슨 일이건 일의 출발점은 성실함이라는 진실을
깨닫고 시작하는 출발이었다.
자기소개로 시작된 커피 수업은 연령층이 꽤나 다양했다. 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청년들과 나와 비슷한 주부들이 제일 많았는데 어쩌면 내가 커피를 배우는 이유와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의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은 관심과 호기심 때문에 배우시기도 하시지만 재취업을 위해 배우시는 분들도 있었고, 나아가서는 봉사활동을 하시려는 분들도 있었다. 나도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꾸준히 일을 해오며 또 새로운 일을 하시려는 어르신들이 새삼 달리 보였다.
나는 거의 30년 만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아이의 엄마이고 전업 주부라는 마음의 무거움 덜어내고자 무엇이라도 배워야겠기에 나선 발걸음이라고.. 일하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갑작스러운 낯선 자리와 새로운 경험은 나의 신경세포를 빨라지게 만들었고, 세상에 무서울 것 없다는 아줌마인 나는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오랜만의 긴장에 마음은 한없이 들썩였다.
커피 이론으로 시작된 커피 수업은 나름 재미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의 시작은 7세기경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로부터 혹은 예멘지역의 수도승 오마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염소나 새가 먹었던 붉은 열매가 세계 2위의 무역상품이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칼디나 오마르의 우연치 않은 작은 관찰이 커피라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 같아 신기했다.
커피의 품종은 아라비카 또는 로부스타 두 종류인데 아라비카 종이 훨씬 향미가 우수하고 신맛이 좋다고 한다. 아라비카종은 너무 덥거나 추워도 안되고 강한 햇볕이나 바람 서리가 내려서도 안된다.
고지대에서 천천히 익는 커피가 맛과 풍미가 뛰어나다고 한다.
아이들도 부모의 과도한 관심보다는 알맞은 관심과 천천한 기다림이 더욱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하듯 커피도 적당한 온도와 기다림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니 어쩌면 커피는 사람과 절친한 운명으로 얽혀 오늘날에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인생을 함께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가볍게 출발한 커피 이론은 깊이 들어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내가 따야 할 자격증은 1급도 아닌 2급이지만 학창 시절 도덕시험 같은 시험일 줄 알고 시작한 커피 이론은 커피 추출에서부터 커피머신의 기계 운용, 생두의 품종과 로스팅 그리고 테이스팅까지 그 영역이 너무 방대했다.
넋 놓고 있다가 대충 필기시험을 보려 했었는데 학원에서 미리 보는 모의고사에서 겨우 70점을 넘기자 운이 나쁘면 60점을 못 넘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년 퇴임하신 한 어르신은 항상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맞으셔서 한참 젊은 내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혹시나 떨어지면 창피함에 다시는 커피학원에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에도 시달리며 나는 갑자기 커피 수험생이 되었다.
잘 나오지도 않는다는 1급 시험문제까지 3일 동안
더 이상 암기가 되지 않는 머리로 문제집 한 권을 다 푸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수험생처럼 열심히 문제를 풀고 나왔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도 뭔가 찜찜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맨날 뭐가 조급하지?
좀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즐겁게 공부했을 시험인데.. 늘 허둥거리고 답만 외우기에 급급했던
학창 시절의 벼락치기를 또 답습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시험도 알쏭달쏭한 문제가 여럿 있었다. 60점만 넘으면 되는 시험이지만 마음자세의 점수는 50점도 넘기지 못한 것 같았다.
허겁지겁 나는 나이 오십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산을 넘고 나니 이제는 큰 산이 버티고 있었다.
내가 자주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카푸치노 같은 커피는 이탈리아식의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이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방법을 배우러 이 자리에 온 듯했다.
적당한 원두의 분쇄에 적당한 커피 원두를 넣어 적당한 시간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것이 커피 수업의 목표였다.
매일 보던 커피숍의 머신이 첫날부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익숙했다. 커피숍의 바리스타들이 아주 쉽게 에스프레소 내리는 모습을 이미 본 터라 내심 실기는 아주 간단하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미 주부의 내공이 있었고, 손도 빠른 편이고 해서 아직은 속으로 쓸만하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이 있었다.
하지만 기계 앞에 서자 나는 다시 초등학교 1학년
어리둥절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처음 만져보는 스팀기와 포터 필터와 탬핑기, 커피 그라인더와 압력계, 기계를 몰라도 바리스타는 기본적으로 알고 확인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실기 첫 시간 나는 첫날처럼 또다시 긴장감을 맛봤다. 물 내리는 버튼도 어색하고 스팀기는 더더욱 어색하고 그라인더에서 쏟아져내리는 원두를 포터 필터에 받아 적당량을 도징 하는 것도 어려웠다. 원두의 양에 따라 커피는 빠르게도 느리게도 추출되었다. 문제는 눈대중인데 제법 눈대중을 자부하고 있으면서도 원두량은 그때그때 달랐다.
일반적으로 커피숍은 거의 자동을 쓰고 있지만
수강생들은 그 양을 정확히 계량해야 했다.
하나라도 허술하게 지나치거나 대충 하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추출해야 했다.
나는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은 이 과정을 몸에 익숙하도록 무한 반복하며 연습해야 했고, 그 과정이 몸에 익으면서야 긴장된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하지만 친하다고 생각했던 커피는 자꾸 어색한 친구처럼 낯가림을 하며 저만치 거리를 두고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